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업장 정리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부실 PF 사업장 매입을 위한 정상화 펀드 자금이 수개월째 잠자고 있는 데다 부실 PF 사업장 분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 여파로 만기 연장에 실패하는 사업장이 대거 등장하면 손실을 이연해온 대주단, 즉 금융회사의 손실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일 입찰이 마감된 서울 및 부산 해운대구 소재 PF 사업장 두 곳에 대한 매입 협상이 3주째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해당 사업장은 금융권 PF 대주단이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 플랫폼에 올린 곳이다. 캠코 플랫폼에는 80여 개의 부실 또는 부실 우려 사업장들이 등록돼 있다.
문제는 플랫폼에 등록된 단 한 개의 사업장도 아직까지 실제로 매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와 민간 자산운용사는 부실 사업장 정리를 위해 지난해 7월 1조 1050억 원 규모의 PF 정상화 지원 펀드를 출범시켰는데 사업장을 매각하려는 대주단 측과 매입하려는 운용사 측이 가격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최근 2024년 경제정책방향 발표에서 PF 정상화 펀드 내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가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2025년까지 취득세 50%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대주단의 눈높이가 먼저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 매입자 측의 시각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병에서 손을 빼려면 쥔 과자를 놓아야 하는데 대주단 측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대주단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려야 할 부실 사업장 규모를 실제보다 축소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부실 사업장을 정상 사업장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이자 후취(후불제) 등의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현재 PF 대주단이 이자 납부 유예 또는 금리 감면 방식으로 자율협약을 체결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정이하여신을 요주의 여신으로, 요주의 여신을 정상 여신으로 분류할 수 있게 비조치 의견서를 적용 중이다.
2금융권 대주단의 한 실무자는 “정상적인 대출이라면 이자를 후취 방식으로 설정하지 않겠지만 자율협약을 하면 절반 이상은 ‘만기 시 후취’로 조건을 변경하고 있다”며 “이 역시 만기가 돼도 이자를 다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만 공매로 넘기면 손실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이자 없이 재연장만 하는 케이스들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말 기준 자율협약이 체결된 66개 사업장 중 48개 사업장에는 이자 납부 조건을 선취에서 후취로 변경하는 등 이자 유예 조치가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초 세 번째로 만기가 연장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르피에르 청담 PF 역시 대출이자 조건이 후취 방식으로 변경됐다.
부실 사업장으로 분류돼야 할 곳이 제대로 분류되지 않고, 부실 사업장으로 분류되더라도 실제 정리는 속도를 못 내는 셈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만기를 연장했던 사업장들의 만기가 이제 또 돌아올 텐데 태영건설 사태로 연장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며 “대주단이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