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투자 받고도 폐업 기로…직원들은 대기업으로 '유턴' 고심

◆고용 빙하기 맞은 스타트업
[IPO 막히자 대규모 구조조정]
작년만 146곳 폐업…2년새 28%↑
시리즈 C·D기업 비용절감 돌입
"올핸 옥석가리기 결과 나타날 것"
[스타트업 위축에 고용환경도 변화]
재직자들 근무 만족도 42% 그쳐
안정적 급여받는 대기업 유턴 고심


고성장 스타트업은 유동성이 풍부했던 최근 5년 동안 ‘고용 화수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지난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벤처 투자 시장 위축의 악재에 이어 내부적으로도 수익 모델 확보에 실패하자 경영난이 심화하며 고용을 줄였다. 올해도 지난해와 견줘 혁신적인 환경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스타트업들의 인력 감축은 물론 폐업을 택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들은 한동안 신규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22년 기준 투자를 받은 2000개사의 전년 대비 고용 증가율은 국내 전체 기업의 약 12배 수준인 29.8%(1만 9000명)에 달했을 정도다. 대기업 이상의 처우를 약속하면서 경쟁적으로 인재 영입에 나선 결과 취업 준비생과 2030 직장인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떠오른 스타트업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투자 혹한기를 거치면서 일부 스타트업의 고용이 쪼그라들었고 올해는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곳들도 상당수다.


특히 데스밸리에 직면한 스타트업의 고용 악화가 심각하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누적 투자 유치 상위 100대 스타트업 중 시리즈 B 단계의 기업은 전년보다 고용 인원이 늘었지만 시리즈 C·D 단계의 기업들은 오히려 전체 고용 인원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고용 인원이 가장 많이 줄어든 상위 100개 스타트업을 별도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시리즈 C의 기업의 고용은 전년 대비 1082명이 줄었고 시리즈 D 기업은 같은 기간 563명이 감소했다. 최고 기업가치로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결국 상장에 실패하면서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 유치 단계가 높은 기업들이 미미한 고용 성과를 낸 것은 후속 투자 유치 실패와 기업공개(IPO) 연기 등 악재가 겹친 데 따른 것”이라며 “IPO 실패로 새로운 성장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스타트업들은 고용을 줄여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실적을 부풀린 ‘파두 사태’ 등으로 IPO 시장이 혼란스러워지자 일부 기업들의 IPO가 연기되기도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올해 인력 구조 조정이 지속되는 것은 물론 아예 회사 문을 닫는 사례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투자 혹한기를 거치며 진행됐던 ‘옥석 가리기’ 작업의 결과가 올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최근 한두 달 사이에 폐업을 고민하는 대표들의 상담 요청만 수십 건에 이른다”며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스타트업 대표들 중에도 사업을 접는 방안을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팁스(TIPS) 운영사인 한 스타트업 대표 역시 “상장 외에는 자금 조달 수단이 없는 규모의 회사인데도 기업가치를 대폭 낮춰 신규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겠느냐고 문의하는 스타트업이 부쩍 늘었다”며 “불과 몇 개월만 지나도 투자금이 모두 소진될 상황이다 보니 당장 직원부터 줄이려는 움직임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 투자 이력이 있는 스타트업 중 폐업한 기업은 총 146개사로 집계됐다. 벤처 투자 시장이 본격적으로 얼어붙기 이전인 2021년 114개사와 비교하면 28.1%나 증가한 수치다. 최근에는 수백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기업들이 폐업하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옐로모바일의 자회사 옐로디지털마케팅과 옐로오투그룹은 각각 511억 원, 3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지난해 10월 사업을 정리했다. 12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스크린 야구 게임 개발 업체 ‘클라우드게이트’, 1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받은 소상공인 매출 정산 플랫폼 ‘더체크’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한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아무리 성장성이 높아도 실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는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특히 대규모 투자를 받은 기업들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지 못할 경우 추가 투자 유치는 거의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자금난을 못 이기고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능한 직원들은 알아서 스타트업을 떠나는 ‘엑소더스 현상’도 본격화할 조짐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3’에 따르면 스타트업 근무에 만족한다고 말한 재직자는 전년보다 7.2%포인트 감소한 42%로 집계됐다. ‘이직하고 싶은 조직 형태’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56.4%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외국계 기업 등을 희망한다고 응답한 반면 벤처·스타트업 이직을 선호한다는 비율은 16%에 그쳤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다양한 보상을 통해 인력을 유치했지만 IPO에 실패하면 결국 보상을 해줄 방법을 찾기 어렵다”며 “우수한 인력들은 확실한 보상이 가능한 스타트업이나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는 대기업들로 이직을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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