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 당국이 불법 조직의 자금 세탁 수단으로 악용되는 가상자산 ‘믹서'에 대한 규제 마련에 나선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가상자산 믹서 규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범죄 집단의 불법 자금 세탁에 믹서가 악용되고 있지만 국내는 아직 믹서에 대한 별도의 제재 규정이 없어서다. 특히 가상자산사업자가 믹서를 이용한 거래를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FIU 관계자는 “믹서를 통한 자금 세탁 위험이 크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믹서는 가상자산을 쪼개고 섞어 여러 지갑 주소로 재분배하는 기술로 거래자의 정보, 거래 내역을 파악하기 어렵다. 믹서는 원래 막대한 현금·자산을 보유한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지만 지금은 해커 등 범죄 조직의 자금 세탁에 악용되는 실정이다. FIU 관계자는 “가상자산을 믹서에 돌리면 자금 추적과 범죄 모니터링이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믹서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조치에 나섰다.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FinCEN)은 지난해 10월 믹서를 자금세탁 서비스로 규제하는 자금세탁방지(AML) 규정을 입법 예고했다. 한 달 뒤에는 북한 해킹 조직 ‘라자루스’가 자금세탁에 주로 사용한 믹서 ‘신바드’를 제재하기도 했다. FIU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이 믹서 규제를 도입하자 국내에서도 논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국내 기업도 가상자산 범죄 조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근 국내 블록체인 기업 오지스의 ‘오르빗 브릿지’에서 8100만 달러 규모의 가상자산이 해킹됐을 때도 일각에선 믹서가 활용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해킹으로 탈취한 가상자산도 현금화해야 의미가 있다”며 “그러려면 가상자산 거래소를 무조건 거쳐야 하므로, 믹서를 이용한 거래가 거래소에서부터 원천 차단되도록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상자산 관련 범죄에 대한 선제 대응은 시장의 건전성 확보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구체적인 제도 수립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규제 도입 논의가 시작됐고 국경을 넘나들며 활용되는 믹서의 특성상 국제 공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당국도 당분간 글로벌 동향을 살피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FIU 관계자는 “믹서는 국제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안이라 각국의 공조가 필요하다”며 “미국도 처음 도입한 제도인 만큼 아직 국제적으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