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대정부 일시대출 조건을 강화한 것은 지난해 정부가 세수 부족을 이유로 한은 일시차입을 기조적인 부족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가 한국은행으로부터 끌어다 쓴 돈은 117조 6000억 원으로 재정증권 발행 규모(44조 5000억 원)를 크게 웃돈다. 일시대출금과 관련한 이자만 1506억 원으로 역대 최대다.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한 2020년(102조 9130억 원)을 예외로 하더라도 2018년(9662억 원), 2019년(36조 5072억 원), 2021년(7조 6130억 원), 2022년(34조 2000억 원) 등과 비교했을 때 이례적으로 많은 수준이다. 금통위가 이번에 “평균 차입 일수, 차입 누계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건을 단 것도 지난해 일시차입 규모가 과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는 한은 일시차입금을 매달 대규모로 가져다 썼다. 지난해 1~8월 정부는 1월(3조 5000억 원)과 5월(6조 1000억 원)을 제외하고 매달 12조 원 이상을 한은으로부터 일시차입했다. 특히 3월 한 달에만 28조 1000억 원을 가져다 쓴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정부의 재정증권 발행 규모가 4억~7조 5000억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은을 금고처럼 활용한 셈이다. 법인세 등 세수 확보 전에 재정 조기 집행 과정에서 재정증권 발행 계획보다 더 많은 자금이 갑작스럽게 필요할 경우 제한적으로 활용하라는 취지를 벗어난 수준이다.
정부가 일시적인 자금 부족 상황에서 재정증권 발행보다 한은 일시차입을 활용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발행 절차가 복잡하고 상환 시기가 정해져 있는 재정증권과 달리 한은 일시차입은 연간 한도 안에서 얼마든지 빌려 쓰고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일시차입 금리와 재정증권 발행 금리는 비슷한 수준이다.
문제는 한은 일시차입이 사실상 통화 발행이라 물가나 자산 가격 상승 압력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시대출 규모가 커질수록 통화정책 교란 요인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 독립성에도 영향을 준다.
반면 재정증권 발행은 민간 자금을 빌렸다가 갚기 때문에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캐나다를 제외한 선진국의 대부분은 중앙은행 대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현행 국고금 관리법에서도 ‘일시적인 부족 자금을 한은 차입에 앞서 재정증권 발행을 통해 조달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한은으로부터 일시차입이 기조적 부족 자금 조달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정해뒀으나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금통위가 여러 부대조건을 강화하면서 규정의 실효성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다만 이번 금통위 의결 사안을 강제할 수 없는 만큼 한은이 정부의 일시대출금 활용을 제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일시차입 활용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이창용 총재는 “저희 입장에서 세수가 한 달 뒤 들어온다고 지금 쓴다고 하면 (일시대출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기 굉장히 어렵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금통위가 “일시차입금 평균 잔액이 재정증권 평균 잔액을 상회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했으나 월간이 아닌 연간 기준인 만큼 실제 효과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일시적 자금 부족이 해소되는 9월 이후까지 합쳐 평균을 낼 경우 평잔 수준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이 정부의 일시대출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할 수 없고 제도 운영 취지에 맞게 균형 있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