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운용하는 퇴직연금 규모가 지난해에만 26조 원 넘게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은행권이 고령화 추세에 발맞춰 상품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전문성 강화에 나서면서 시장 영향력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16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시중은행 10곳이 운용 중인 퇴직연금 적립액은 지난해 말 189조 4407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보다 26조 7733억 원(16.5%) 증가한 수치다. 은행별로는 하나은행이 6조 4349억 원(23.6%) 증가해 가장 많이 늘었고 KB국민은행 5조 3116억 원(16.9%), 우리은행 3조 2475억 원(15.9%) 순으로 높은 적립금 증가율을 보였다. 신한은행의 경우 적립금이 1년 새 5조 3840억 원(15.4%) 늘어 은행권 최초로 적립금 40조 원을 돌파했다.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운용 형태로는 기업이 운용을 책임지는 확정급여(DB)형 비중이 41.7%(79조 838억 원)로 가장 컸다. 가입자가 운용을 책임지는 확정기여(DC)형은 32.2%(61조 873억 원), 개인형퇴직연금(IRP)은 26.1%(49조 2686억 원)였다. 특히 은퇴 인구가 늘면서 근로자가 자율 가입하거나 이직 시에 받은 퇴직급여 일시금을 계속해서 적립·운용하는 제도인 IRP 비중이 유일하게 지난해 대비 2.6%포인트 늘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령화 등 은퇴 인구가 늘면서 노후 생활을 위해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지급받는 대신 연금 형식으로 운용하는 비중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 입장에서도 상품 라인업을 다변화하고 담당 인력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상품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되면서 원금비보장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시중은행의 지난해 4분기 DB형 기준 원금비보장형의 평균 수익률은 9.9%로 평균 수익률이 4.0%를 기록한 원금보장형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이는 같은 분야의 증권사 평균 수익률 9.0%보다 높다. 하나은행 연금지원사업부 관계자는 “은행권 최초 원금보전추구형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를 출시한 데 이어 은행권 퇴직연금에서는 유일하게 채권 직접 판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선도적으로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려 노력 중”이라며 “해외 펀드를 포함한 우량 투자 상품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 상품 관리 체계를 지속해서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은 커지는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문 상담 시스템 도입 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퇴직연금은 한 번 가입하면 장기간 유지하는 만큼 은행들이 수수료 수익 등 비이자 수익을 늘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퇴직연금 고객관리센터를 통해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고객 상담 시스템을 도입했다. 우리은행도 연금고객관리센터에서 고객이 전담 직원과 1대1로 상담하는 고객전담제 개인화 상담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연금자산 관리부터 은퇴·노후 전반에 대한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KB골든라이프센터를 운영 중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퇴직연금 거래 기업 임직원을 위해 ‘찾아가는 연금 리치(Rich) 세미나’를 실시하는 등 연금 특화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