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펀드 역대최대 9조 만기…VC 업계 초긴장[시그널]

만기 약정액 1년새 70% 늘어 '최대'
고금리·투심침체 속 기관, 청산 독려
VC, 헐값 처분·투자 축소 나설판
"세컨더리펀드 추가 조성" 지적도

벤처기업인들이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반포 한강공원 마리나파크 열린 '2023 벤처캐피탈 송년의 밤' 행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벤처캐피탈협회

올해 역대 최대인 약 9조 원의 벤처펀드 만기가 도래하면서 국내 벤처 업계의 자금난이 한층 확대될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와 차가워진 스타트업 투자 열기에 주요 기관 투자자들이 만기 연장을 원하지 않고 있어 VC들은 헐값에 투자 자산을 처분하거나 신규 투자를 줄여야 하는 처지다.


12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 약정액은 약 8조 8500억 원(펀드 수 331개)이다. 지난해가 약 5조 원(약 220개)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70% 이상 증가했다. 2025년(약 4조 9000억 원)과 2026년(약 5조 7000억 원)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올해 펀드 만기 물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2016년 벤처펀드 조성액이 과거보다 급증했던 영향이 크다. 벤처펀드는 관련법에 따라 존속 기간 5년 이상으로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VC들은 벤처펀드 존속 기간을 8년으로 설정한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 가운데 상당 수는 8년 전인 2016년 조성된 펀드(86개)가 가장 많다.




문제는 올 들어 출자자들이 빠른 투자금 회수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형 출자기관 담당자는 “만기 연장을 통해 수익률이 대폭 늘어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는 불가 방침을 정했다”며 “이미 여러 VC에 만기 전 펀드 청산을 독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VC들은 만기 규모가 큰 데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뻥튀기 상장’ 논란을 일으킨 파두의 영향으로 스타트업들의 주요 상장 방식인 기술특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기업공개(IPO) 뒤 장내 매각을 통한 수익 회수가 이전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중 유동성 감소에 인수합병(M&A)을 통한 거래 방식도 녹록지 않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의 청산 요구가 이어지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VC들이 자산매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자 자산이 대거 헐값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직방과 리디, 무신사, 두나무 같은 유니콘 기업마저도 직전 투자 유치 때보다 50% 이상 할인된 가격에 구주 거래 매물이 나오고 있다.


시장에서는 ‘대규모 펀드 만기 및 연장 불가→벤처 투자자산 헐값 매각→벤처펀드 수익률 감소→시장 유입 자금 축소→벤처 업계 자금난’이라는 악순환을 우려한다. 이 때문에 세컨더리펀드 추가 조성을 통해 벤처투자 생태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세컨더리펀드는 펀드 만기나 조기청산을 앞두고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자금난을 겪는 사모펀드(PEF)나 벤처캐피털 등이 보유한 벤처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펀드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세컨더리펀드 조성을 더욱 늘리는 것이 펀드 만기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중기부는 “정부에서도 회수 시장 활성화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며 “코리아스타트업펀드를 통해 조성할 세컨더리펀드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