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증원 이슈를 놓고 벌이는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 샅바싸움이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다. 양측은 지난해부터 1년이 넘게 거의 매주 의료현안협의체를 진행하고 있지만 요식행위에 그친다는 평가가 많다. 양측이 하고 싶은 말만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할 뿐 단 1㎝도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25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진행했다.
이날 협의체는 올 들어 두 번째 회의였던 데다가 이틀 전 복지부가 의협에 의대정원 확대 적정규모에 대해 답을 달라는 공문을 보내는 등 최후통첩을 날린 직후라 관심을 모았다. 물론 의협은 복지부에 ‘답변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양동호 의협 협상단장은 “의협은 지난 회의에서 의대정원 문제에 대해서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밤샘토론,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협의체 내에서 풀어나가자고 강력히 제안했으며 지금도 이 문제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임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틀 전인 지난 15일 복지부는 일방적으로 의협에 공문을 보내 의대정원 규모에 대한 의협의 의견을 물어왔다. 이는 대화와 협상의 당사자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의정 간의 신뢰에 찬물을 끼얹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로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양 단장은 이어 “정부가 과연 의대 정원 문제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하려는 진정성과 의지가 있는 것인지 깊은 의문이 든다”며 “의협은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료계와 정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여 결론을 낼 것을 정부에 재차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다면 끝장토론, 밤샘토론을 통해서라도 의대정원에 대해 의협과 정부가 서로의 입장 및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공개하고 빠른 시일 내에 의대 정원 문제를 결론지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루 빨리 마무리할 것을 다시 한번 제안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최근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규모를 발표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국장은 “이들 협회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규모를 2000년 의약분업 당시 감축했던 350명 수준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며 “하지만 왜 그 규모가 적정한지는 20년 전에 교육했던 정원의 복원이라는 것외에 다른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정 국장은 “20년 동안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3배 가까이 커졌고 교육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 대한 투자도 대폭 늘어서 경제 사회적으로 크게 발전했다”며 “대학 교육의 규모와 질적 수준도 그만큼 올라간 상황인데 이러함에도 의과대학교육 역량과 질은 제자리 걸음이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들 협회가 주장한 350명의 증원 규모와 관련, “각 의과대학이 현재의 교육 역량과 발전적 투자를 통해서 의대교육이 가능하다고 밝힌 규모, 즉 최소 2100명에서 최대 3900명과도 너무나 괴리가 크다”며 “또한 의대협회의 제안은 현재의 지역 필수의료 부족상황과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 증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국장은 그러면서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해 각계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상황에서 이런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위해 정부가 의료계 대표단체인 의협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객관적인 데이터를 갖고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를 하자고 하면서 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 국장은 의사협회 내에서 모아진 의견과 근거를 공식적으로 제시해 달라고 다시 한번 촉구했다. 그는 “정부는 의협을 비롯한 각계 의견을 모아서 협의체에서 진지하게 토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