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항셍 중국기업지수(HSCEI·홍콩 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하며 ELS를 ‘손절매’하는 중도 해지가 2배 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며 ELS 발행액도 30% 가량 줄었다. 특히 홍콩 H지수가 새 해 들어 계속 추락해 ELS 손실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다른 고위험 상품에 대한 기피 현상도 불러오고 있다. 코스피 200 지수 하락의 2배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에서 최근 일주일간 1000억 원 넘는 자금이 유출됐다.
1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원화·외화 ELS 중도 상환액은 1267억 원으로 한 달 전인 11월(684억 원) 보다 85.2% 증가했다. 지난해 1~7월만 해도 월별 ELS 중도 상환액은 100억 원대에 머물렀지만 8월(527억 원)과 9월(419억 원), 10월(584억 원) 등 하반기로 갈수록 중도 해지 규모가 커졌다.
ELS 중도 상환은 주식으로 치면 ‘손절매’와 같다. 대형 증권사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일부 손실을 감내하더라도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ELS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는 고객들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며 “홍콩 H지수를 기초 지수로 삼은 고객들이 대부분” 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ELS 발행액은 3분의 1 넘게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원화·외화 ELS 발행액은 1조 8553억 원으로 11월(2조 7755억 원) 대비 33.1% 줄면서 1조 원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발행액이 가장 많았던 4월(3조 6778억 원)과 비교하면 2조 원 넘게 증발한 것이다.
홍콩H지수를 따르는 ELS 발행액은 반토막났다. 지난해 12월 H지수 ELS 발행액은 1522억 원으로 11월(4023억 원) 대비 62.2% 급감했다. H지수 ELS 발행액이 1000억 원대까지 내려온 것은 지난해 1월(1129억 원) 이후 11개월 만이다. H지수 ELS 발행액은 중국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작년 4월 8301억 원까지 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치를 밑도는 리오프닝 효과에 4000억 원 수준을 횡보했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에 연계해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이다. 특히 2021년 발행된 홍콩 H지수 ELS의 손실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애초 ELS는 연 7~8%대 수익을 주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통용됐다. ‘채권보다 수익이 좋다’고 입소문이 나며 은행 PB 창구 등을 찾는 고객들이 주로 사들였다.
그러나 2021년 2월만 해도 1만~1만 2000포인트 선에서 거래되던 홍콩 H지수가 이날 기준 5100선까지 폭락하며 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는 대규모 원금 손실이 불가피한 고위험 상품으로 전락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당분간 ELS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예상한다. 홍콩 H지수 ELS가 대규모 원금 손실 위기에 내몰리면서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ELS의 주요 판매 창구였던 은행들이 금융 당국의 현장 검사 등으로 판매를 중단하면서 증권사도 무턱대고 발행량을 늘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ELS발 위험 기피 현상은 다른 고위험 금융 상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스콤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상장지수펀드(ETF) 중 순유출 금액이 가장 큰 상품은 KODEX 200 선물인버스2X로 1420억 원이 빠져나갔다. 또 다른 인버스 상품인 KODEX 200에서도 272억 원이 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