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C 현물 ETF '미친 흥행', 글로벌 금융사 신났는데…국내는 그림의 떡

[크립토 스프링, 한국만 예외]<중>
비트코인 현물 ETF, 3일 누적 거래 96억弗
美 외에 홍콩·싱가포르·일본 등 합류 관측
선점효과 잃은 韓…"제도 예측가능성 떨어져"

출처=셔터스톡

비트코인(BTC)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 3일 만에 100억 달러(약 13조 4209억 원)에 육박하는 거래량을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가상자산 관련 상품 시장에 대규모 자금이 몰리면서 전세계 주요 자산운용사들도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국내에선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을 금융사가 중개·출시할 수 없어 국내 업계가 가상자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17일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비트코인 현물 ETF의 출시 3일차 누적 거래량은 96억 달러(약 12조 8956억 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미 증시에 상장된 500개의 ETF 거래량을 모두 합친 4억 5000만 달러(약 6041억 원)보다 20배 많은 규모다. 가상자산 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의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트러스트(GBTC)’ 거래량이 51억 달러(약 6조 8472억 원)로 가장 많았고 블랙록이 출시한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가 19억 달러(2조 5509억 원), 피델리티의 ‘피델리티 와이즈 오리진 비트코인 펀드(FBTC)’가 14억 달러(1조 8796억 원)로 그 뒤를 이었다. 에릭 발추나스 블룸버그 ETF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가장 높은 거래량을 기록한 ETF의 거래량은 4500만 달러(약 604억 원)에 불과했고 이 정도 규모를 달성하기까지도 몇 달이나 걸렸다”며 “비트코인 현물 ETF는 출시 3일차에 블랙록 ETF 상품 하나만으로 지난해 출시된 ETF 총 거래량을 넘어선 것으로 ‘믿을 수 없는(insane)’ 수준의 흥행몰이 중이다”고 평했다.



비트코인(BTC)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3일차 누적 거래량/ 출처=블룸버그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의 흥행은 이미 출시 전부터 예견됐다. 전세계 규제기관의 대표 역할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 아래 블랙록 등 내로라 하는 전통 자산운용사들이 내놓은 상품인 만큼, 제도권 금융시장에서 가상자산을 직접 거래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투자자 보호·보안 등의 이유로 가상자산 투자를 망설였던 기관·개인 투자가는 비트코인 현물 ETF에 출시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가상자산에 비교적 회의적이던 JP모건마저 블랙록 ETF의 지정 참가사로 참여하면서 일찌감치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미국 시장 외에서도 전 세계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비트코인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캐나다 자산운용사 퍼포스인베스트먼트는 이미 지난 2021년부터 비트코인 현물 ETF를 상장해 운용 중이다. 아시아권에선 홍콩과 싱가포르, 일본이 다음 타자로 점쳐진다. 리비오 웡 홍콩 해시키 그룹 COO는 지난해 10월 홍콩 자산운용사 10곳과 가상자산 현물 ETF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 최대 규모의 투자은행 노무라 그룹은 이미 지난해 기관투자가 대상으로 비트코인 투자 펀드 ‘비트코인 어돕션 펀드’를 출시했다. 홍준기 컴벌랜드코리아 대표는 해시드 오픈리서치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으로 시장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이 달라지게 됐다”며 “블랙록·피델리티 같은 미국의 거대한 전통 금융사들이 뛰어들었고, 이를 SEC가 승인한 것은 사실상 게임 체인저”라고 짚었다.


그러나 국내 금융업계엔 그림의 떡이다. 당국이 국내에선 해외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가 불가능하다는 방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이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현물 ETF 등 가상자산 관련 상품 출시도 더욱 먼 얘기가 됐다. 전세계 금융기관들이 가상자산 관련 상품 시장 선점 경쟁에 뛰어드는 동안 국내 금융사는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업계에선 국내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비트코인 현물 ETF를 도입한다 해도 ETF 시장은 선점 효과가 커 후발주자들에게 불리하다. 당장 해외 증시에 상장된 가상자산 현물 ETF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막힌 국내 투자자들 역시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비트코인 가격이 지금보다 상승할 경우 이미 기존에 현물 ETF에 투자한 글로벌 투자자에 비해 가격상승과 선점효과 등에서 국내 투자자들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명확한 규제 정립부터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선 가상자산 관련 법과 제도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산업 참여자들이 의도치 않게 사각지대에 노출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당국과 각 부처마다 입장이 조금씩 달라 생기는 혼선이 해소된다면 업계는 정부 방침에 맞춰 적극적으로 따라갈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욱 커졌다. 오종욱 웨이브릿지 대표는 “국내에선 가상자산기본법이 아직 마련되지 못한 데다 증권사·금융사들은 현재 가상자산 투자가 불가능하고 은행들이 직접 수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필요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시장에 기관과 법인들이 진입하게 되면 기관들은 자산배분의 효과를 가져갈 수 있고 금융사들은 고객에게 새로운 대체투자상품을 제공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추가적인 기술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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