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과 몰리는 이유 들여다보면 ‘필수의료 해법’ 보인다 [전문가 칼럼]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장
[현직 의사가 생각하는 필수의료 해법-下]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해결하려면 의료기관의 진료비를 산정하는 기준인 상대가치 점수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본지 1월 13일자 19면 참조


상대가치 점수는 진료비용과 의사 업무량, 위험도의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여기서 진료비용은 의료행위를 하기 위한 인건비·장비비·재료비 등의 제반 비용, 의사 업무량은 수술행위료, 위험도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발생하는 분쟁해결 비용을 뜻한다. 세 가지 중 진료비용이나 위험도는 수익으로 가져갈 수 없다. 의료기관이나 의사가 수술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부분은 의사업무량 단 하나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외과의사가 많이 시행하는 충수절제술(맹장수술)의 상대가치 점수를 토대로 산정한 행위료는 7만 5000원, 위험도는 1만 5000원이다. 만약 충수절제술 이후 환자가 사망할 경우 최소 2억 원 이상을 배상해야 한다. 과연 어느 보험회사가 이런 구조의 보험상품을 만들까. 수술이라는 필수적인 의료행위를 시행하는 의사가 이익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손해만 막심하게 만들어 놓은 제도가 바로 상대가치 점수 제도다.


서울 강남에서 운영 중인 의료기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같은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22년 1월 기준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 1800여 곳 중 과반수는 미용성형 위주의 진료를 한다. 미용성형 분야는 상대가치 점수 제도의 통제를 받지 않아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도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 소비자들도 조금 비싸더라도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반면 외과, 산부인과 등 소위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흔히 ‘정재영(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또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라 불리는 인기 전공과목도 상대가치 제도의 영향을 덜 받고 의료분쟁의 위험이 낮다.


필수의료 중 아직 인기가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내과다. 내과는 고혈압, 당뇨병, 감기 등 다양한 분야를 진료하면서 박리다매를 통한 진료 수익이나 내시경, 혈액검사 등을 통한 부가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정형외과는 다양한 질환이나 외상을 통해 진료 숫자가 늘어난다. 수술이 아니더라도 진료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인기과는 모두 질병의 발생 빈도가 높으면서 의료분쟁의 위험을 적절히 피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반면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 같이 기피현상이 두드러지는 필수의료 분야는 질병의 발생 빈도가 낮고 위험도가 높다. 필수의료 분야의 인기를 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질병 발생 빈도나 고난도 수술행위의 가치가 부여되어 있지 않는 상대가치 점수를 혁신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상대가치 점수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제도의 전체적인 골격을 유지하면서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리려면 질병 발생 빈도와 위험도를 반영한 특단의 정책 수가가 신설돼야 할 것이다.


필수의료 분야의 특징 중에 하나인 ‘대기시간’에 대한 임금 지불도 필요하다. 현행 상대가치 점수에는 이런 세부사항이 빠져 있다. 응급 수술이나 응급 분만을 위해 의사가 밤새 대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데도 수술·처치·분만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게 현실이다. 수술은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나이를 먹고 시력이 떨어질수록 응급 상황에 대비해 밤새 대기하고 야간에 발생하는 의료행위를 수행하기에 체력적인 어려움이 많다. 수술하기도 어려워진다. 실제 응급 수술을 담당하는 전문의는 수술하지 않는 전문의에 비해 조기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중환자에 대한 수술이나 처치를 하지 못하게 되면 외래 진료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다듬고 정책수가를 넉넉하게 반영해야 한다. 정책수가란 정부가 필요에 의해 수가를 상향할 수 있는 제도다.


필수의료가 위기에 처한 건 비단 상대가치 제도 탓 만은 아니다. 의료기관은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개인이 설립하게 된다. 이러한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과도한 국가통제, 소위 관치의료를 지속하다 보면 갈등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수백 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투입하고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저출산 대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실패의 원인은 결혼과 출산을 해야 하는 젊은 층들이 원하는 분야에 재정을 효과적으로 투입하지 않았던 데 있다. 현재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원하는 정책은 의대 증원이건 지역의사제건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재정 투입은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 같은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장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