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될 정도로 정말 무력하고 무능했나.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이 미리 새겨지고 이에 따라 우리가 조선사를 보는 것은 아닌가. 신간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에서 저자는 우리의 근대사를 우리 시각에서 다시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저자는 지난해 ‘한일 근대인물 기행’으로 핵심 인물의 활약상을 풀어냈고 이번 책에서는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던 근대 한일간의 사건을 파헤친다.
이번 책에서 저자가 관심을 갖는 시기는 강화도조약으로 일컬어지는 조선의 개항과 함께 청일전쟁 직전에 단행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이다. 두 사건은 일본이 조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해외 국가들에 가짜뉴스를 전파해 결국 조선 내 정보까지 왜곡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1870년대에 시작해 철저하게 기획되고 준비된 상태서 진행된다. 반면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조선 조정은 이러한 위협을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1876년 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이 한국에서 마구잡이로 암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특히 1894년은 동북아시아 정세를 바꾼 역사적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 해다. 김옥균 암살 사건,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 큰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 사이에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이 이뤄진다. 경복궁 점령이 일본이 조선 조정을 처음으로 완전히 장악하는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청일전쟁 같은 다른 큰 역사적 사건에 묻혀 시선을 끌지 못했다.
오랜 시간 경복궁 점령 사건이 소홀히 다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이후 진행된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국내외 언론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발적인 사건’이라는 일본의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은 국내외 학계에서 정설로 굳어진다.
책은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어떤 방식으로 사실을 조직적으로 축소하고 은폐했는지 각종 사료와 객관적 자료에 의거해 하나하나 밝힌다. 조선에 주재하던 일본 공사관과 본국 외무성이 주고받은 각종 전신, 일본 외무대신의 회고록, 당시 일본의 각종 신문의 보도기사, 최근 발굴된 사료 등이 이용된다.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적 야욕을 대내외적으로 드러낸 일본 지도부의 민낯과 국제 정세에 어두워 결정적인 순간마다 패착을 범한 조선 지도부의 면면을 독자들에게 대비시켜 보여준다.
특히 한일 근대 외교사 속에 등장한 주역을 소개하며 그 내막을 밝히고 주역들의 대화 전문을 생생하게 보여줘, 한 편의 드라마 사극처럼 읽힌다. 2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