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기차로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전남 여수시 남면 묘두 인근의 선착장. 배를 타고 5분 동안 바다 내음을 헤쳐 나가니 칸마다 그물을 친 가두리 양식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올 늦가을께 수확될 어린 참조기들이 그 아래서 펄떡이며 요동치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 17일 찾은 ‘여수한가네’ 양식장에선 글루타치온과 프로바이오틱스를 배합한 사료를 먹여 참조기를 길러낸다. 이 덕에 항생제 없이도 참조기의 영양 상태와 외관을 관리할 수 있다. 3년 간 공들여 마리 당 150g 수준까지 몸집을 키운 참조기는 전남 영광 법성포의 가공장으로 운반돼 굴비로 다시 태어난다. 이곳에서 아가미와 비늘을 제거한 뒤 4주간 건조를 거쳐 롯데백화점 굴비 선물세트로 포장된다. 이번 설은 양식된 참조기가 지역 유통사를 넘어 본격적으로 백화점에 납품되는 첫 사례다.
이 양식장을 관리하는 조유선(55) 씨는 “양식 참조기의 크기는 자연산의 두 배에 달하지만, 가격은 동일 중량 기준 35% 저렴하다”면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 새 해양 환경이 변하면서 자연산 원물 공급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100g을 넘기는 고중량 개체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육질을 따져 등급을 매기는 축산이나 당도를 선별하는 과일과 달리 물고기는 중량이 곧 품질로 통한다.
건조 방식 역시 노지 대신 관리된 시설을 활용해 위생 수준을 높였다. 새로운 시도도 더해지고 있다. 전자레인지로 간편하게 내놓을 수 있도록 미리 쪄놓은 상품을 내놨다. 가정에서 냄새나 번거로움 때문에 생선 굽기를 꺼리는 점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참조기 양식은 1990년 첫 연구가 시작될 정도로 역사가 깊지만, 상품화 단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유통업계가 요구하는 매끈하고 탄력적인 형태를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수온을 비롯한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 조건도 난점으로 꼽힌다. 조 씨는 “1세대였던 제주도에서의 양식은 참조기의 운동력이 떨어져 금붕어처럼 뚱뚱한 체형이라고 외면 받았고, 2세대 때는 수심이 얕은 서해안 염전에 자리잡은 탓에 겨울이면 고기가 얼어 죽기 일쑤여서 번번이 실패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백화점 입점에 성공하면서 어업 현장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전과 달리 직접 실물을 보여줄 수 있어 판로를 넓히는 효과도 크다. 조 씨는 “온라인에서 소량을 판매한 경험에 비춰볼 때 결국 소비자들은 눈으로 확인한 수산물을 구매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면서 “그만큼 오프라인을 통해 전국에 상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절실했다”고 말했다.
업계 최초로 양식 굴비를 명절 선물세트로 들인 롯데백화점 입장에서는 구색을 다양화하는 장점이 있다. 회사 측은 지난 추석 양식 굴비세트를 단일 품목으로 시범 운영한데 이어 이번 설에는 3종 9품목으로 물량을 늘렸다. 150g 내외의 참조기를 선별해 만든 굴비를 최대 3000세트 가량 확보했다. 이승훈 롯데백화점 수산팀 바이어는 “양식 참조기는 통제된 환경에서 자라 최근 이슈가 된 수산물 안전성과 맞물려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