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속세 결정세액 규모가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 별세 같은 일회성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최근 5년간 세 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속세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는 만큼 관련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2일 서울경제신문이 국세청의 ‘2023년 국세 통계 연보’를 분석한 결과 2022년 피상속인 34만 8519명이 남긴 재산 96조 506억 원 중 상속인들이 부담해야 할 결정세액은 19조 2603억 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상속세 실효세율은 20.05%를 기록해 처음으로 20%를 돌파했다.
다만 2022년의 경우 삼성전자 오너 일가의 상속세 결정세액 12조 원을 빼면 전체 규모와 실효세율이 낮아진다. 문제는 이를 감안해도 상속세 규모가 매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2조 5197억 원이던 상속세 결정세액은 △2019년 2조 7709억 원 △2020년 4조 2294억 원 △2021년 4조 9131억 원 등으로 불어났다. 2022년은 삼성의 수치를 제외해도 7조 2000억 원을 웃돈다. 2018년 대비 약 2.88배, 2001년과 비교할 경우 18배 많다.
재계에서는 기업인 사망과 가업승계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상속세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유족이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만 6조 원이다. 현재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 통합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영권 분쟁도 상속세 마련 문제가 발단이 됐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의 상속세는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면서 “대통령실에서도 과도한 할증 과세로 보는 측면이 있는 만큼 전면 개편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속세 과표구간·세율 24년째 그대로…커지는 "상속세 전면개편" 목소리
한때 상속세는 초고액 자산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전체 피상속인(재산을 남긴 사망자) 중 1% 미만이 상속세를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24년간 과표가 고정되면서 상속세를 내야 하는 이들이 10배 이상 늘어났고 높은 상속세율을 적용받는 이들도 덩달아 증가했다. 현행 상속 세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2000년 피상속인 21만 1619명 중 상속세를 내야 할 정도로 유산이 많았던 피상속인은 1389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이 규모가 1만 5760명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2018년 8002명과 비교해도 곱절이다. 전체 피상속인 중 상속세를 내야 하는 피상속인 비중 역시 2000년 0.66%에서 2018년 2.24%를 거쳐 2022년 4.53%로 불어났다. 상속세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들이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그 배경에는 24년간 변하지 않은 상속세 구조가 있다. 현행 상속 세제는 1996년 제정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최대주주는 60%)로 오르고 최고세율 과표 구간을 50억 원 초과에서 30억 원 초과로 낮춘 뒤 사실상 그대로다. 그 사이 물가는 1996년 대비 97%, 2000년 대비 70% 뛰었다. 물가와 자산 가격 상승을 고려하지 않고 과표 구간과 세율을 고정하며 아파트 한 채 보유한 중산층도 몇 억 원대의 상속세를 내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고 상속세율이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한국은 대주주의 경우 상속 평가액에 20%를 가산해 세금을 물린다. 결국 기업가들은 최고 60%의 상속세율을 적용 받아 실질적인 세 부담이 OECD 회원국 중 1위다. OECD의 ‘OECD 국가의 상속세’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세수에서 상속·증여세 비중은 한국이 1.59%(2019년 기준)로 가장 높았다. OECD 회원국 평균은 0.36%에 불과했다.
높은 상속세율이 유지되는 가운데 상속세 납부 대상자들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결정세액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2000년 5137억 원에서 2022년 19조 2603억 원으로 22년간 40배 가까이 뛰었다. 2022년의 경우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유족의 상속세 결정세액 12조 원을 제외해도 7조 원이 넘는다. 지난해도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족의 상속세가 6조 원으로 결정된 만큼 상속세액의 고공 행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상속세가 기업 경영을 옥죄는 사례도 잦다.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의 통합 과정에서 불거진 오너 일가의 분쟁이 대표적이다. 이들 그룹의 합병 배경에는 소재와 제약·바이오 부문의 시너지 효과 이외에 상속세 납부 문제가 있다.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회장의 별세로 대주주 일가는 5000억 원에 육박하는 상속세 납부 자금이 필요했다. 합병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면서도 서로가 주요 주주가 돼 양측의 그룹 지배력도 공고히 할 수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상속세는 높은 세율로 경영의 안정적인 승계를 어렵게 한다”며 “(세수 감소에 따른) 일정 정도의 충격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상속에 개편에 따른 재정 부담은 풀어야 할 숙제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유산취득세 도입 시 상속인 수(2~4명)에 따라 세수가 6379억 원에서 최대 1조 2582억 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최대 30억 원인 배우자 공제를 2배로 확대할 경우 상속세 수입이 6364억 원 줄어든다. 과표·세율 조정, 최대주주 할증 폐지 등 상속 세제의 전방위적 개편이 이뤄지면 수조 원의 세입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는 게 기획재정부 안팎의 평가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 완화 등의 감세 정책과 맞물리면 결손 규모가 10조 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
결국 내년 나라 살림 적자 폭도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어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가 건전 재정을 위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GDP의 3% 이내로 묶는 것이 뼈대다. 이대로라면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재정준칙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감세안들이 결국 재정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