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를 하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동심으로 돌아간 한국어 선생님들의 눈과 손이 즐겁다. 마지막 한 자락을 접어 넣으니 완자무늬가 그려진 한지 복주머니의 붉고 푸른 모습이 고고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에서 개최된 한국어교원 연수회의 문화 수업 장면이다.
한지에 매료된 이들은 선생님만이 아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는 색다르게 한지를 즐기는 외국인 친구들이 있다.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 대표 예술 행사인 ‘프로젝트 일리차 큐 아트’에 참가한 자그레브 세종학당의 시각 예술 동아리 학생들이 행사 참가자들에게 한국화가 그려진 이색적인 종이를 소개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먼 나라 크로아티아의 학생들이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게 한지가 어떤 종이고 왜 아름다운지를 설명하는 희귀한 장이 펼쳐졌다.
손이 트도록 닥나무 껍질을 벗기고 삶고 찌는 고단한 과정 끝에 비로소 곱고 은은한 한지를 얻는 장인의 정성을 아는지, 참가자들은 한지의 매력에 심취된다. 한지가 ‘100번의 손이 가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따뜻한 종이’라고 설파한 고(故) 이어령 세종학당재단 명예학당장님의 마음이 시간을 넘어 우리 세종학당 학생들에게 닿은 것은 아닐까.
‘지천년견오백’이라 했던가. 비단은 500년을 버티는 데 불과하지만 한지는 1000년을 간다는 말이다. 장인의 오랜 정성으로 만들어진 이 따뜻한 종이가 1000년을 간다. 발간 550년 된 구텐베르크 성경은 훼손의 우려로 열람조차 어렵지만 한지에 기록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000년을 넘어왔다. 이탈리아의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가 자국의 기록 유산 보존 복원에 한지를 활용하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자국의 문화재 복원에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뜻하고 긴 생명력을 가진 한지는 한국어를 매개로 만난 해외 세종학당과의 이상적인 관계를 표상하는 듯하다. 세종학당재단은 2022년 ‘한지살리기재단’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신규 세종학당 지정서를 필두로 임명장과 상장·수료증·협약서 등 각종 증서를 안동 한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전 세계 248개 세종학당에서 한지로 만들어진 이 문서들을 보면서 1000년의 약속과 희망을 읽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한지에 한 자 한 자를 수놓듯 정성스레 써내려가던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세종학당 학생들이 한지 부채를 만들어 청아한 바람을 실어 보냈다. 부채에 쓴 ‘봄날’ ‘소망’ ‘행복’과 같은 말처럼 전통 한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돼 세계인과 더불어 한지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되기를 20만 세종학당 학생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