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이 일본 기업에 입사해 미국에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기까지 36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고난과 역경도 많았지만 그저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마치 운동을 통해 근력이 붙듯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이명원(미국명 메건 리) 파나소닉 북미법인 대표는 12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 서울경제신문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한인 여성으로서 파나소닉 북미법인을 이끌고 있는 입지전적인 커리어의 소유자로 국내 매체와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표는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일본 기업인 파나소닉에 입사해 2021년 파나소닉 북미법인 이사회 의장 겸 CEO에 올랐다. 한국계 여성으로서 일본 기업에 입사해 북미법인의 ‘최고봉’에 오른 것이다. 흔한 한국계 미국인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 대표는 파나소닉 북미법인의 법무팀 비서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 대표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하드십(고난)이 있었으나 어려웠던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다”며 “그 경험들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를 만난 자리는 CES 2024가 강조하고 나선 인류 안보(HS4A) 세션 직후였다. 인류 안보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가로막는 난제를 풀기 위한 기술을 뜻한다. 이 대표는 동양인 여성이라는 태생적 배경을 바탕으로 파나소닉의 사회 공헌 활동을 이끌어가고 있다. 파나소닉은 최근 2차전지로 사업 중추를 옮겨가며 탄소 중립을 비롯한 ESG 활동에 힘주고 있기도 하다. 이 대표는 “인류 안보와 ESG는 사회 공헌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다는 큰 틀에서 동질성을 지닌다”며 “파나소닉은 105년을 지탱해오며 기업의 장기적 생존에 사회 공헌이 필수라는 이념을 회사의 기본 철학으로 받아들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기업이 항상 사회 공헌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태양광 프린터, 수소에너지 등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신기술 연구개발(R&D)에 큰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나소닉 북미법인은 올해 창립 65년째를 맞는다. 가전제품 위주 사업을 벌여오던 과거와 달리 현재 핵심 사업 분야는 2차전지다. 최근 북미 2차전지 시장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북미 전기차 시장 확대와 더불어 대중국 2차전지 제재 강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도입 등으로 투자 확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SK온 등 국내 2차전지 업체들도 앞다퉈 미국 현지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일찌감치 북미 시장에 진출에 테슬라에 첫 차량용 배터리를 공급하는 등 입지를 다져왔다. 이 대표는 “파나소닉은 10여 년 전부터 북미에서 배터리를 생산해왔고 공장은 5년 이상 ‘풀 가동’ 중”이라며 “지난해 투자를 발표한 캔자스 공장이 내년 봄 가동하면 현 4000명인 북미 생산 인력도 두 배 이상 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IRA 도입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나 준비가 철저했던 기업에는 역으로 큰 기회 요소”라며 자신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