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흉악범 강력 대응 경찰에 힘 실어줬다…물리력 행사 면책 심사 37% '쑥'

지난해 하반기 월평균 1.1→2.2건 증가
동기간 직권심사 비율 역시 45.5% 급증
치안성과지표 '인권위 권고 수용도' 삭제
전문가 "소송 경찰관 법률지원도 강화해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난해 11월 6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경찰관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관 A 씨는 지난해 12월 8일 경기 시흥시 정왕동의 한 술집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술에 취해 다른 테이블 손님을 흉기로 위협하던 B 씨는 경찰관을 발견하고 도주했다. 흉기를 집어던지며 저항하던 B 씨는 1㎞가량 추격한 A 경찰관에게 어깨를 붙잡힌 뒤에도 이를 밀치고 도주하려 했다. 결국 B 씨는 경찰관이 쏜 테이저건에 맞고 체포됐다. 흉기 난동을 포함해 각종 강력 사건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경찰관의 물리력 행사의 정당성을 따지는 면책 심사 건수가 지난해 하반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성남시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는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자 범인 제압 등 현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경찰이 적극 대응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이 치안 강화를 위해 면책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물리력 사용에 가장 큰 걸림돌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법률 지원이 없을 경우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경찰청 감사관실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물리력 행사 적극 행정 면책 심사 건수는 월평균 2.2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020~2022년 월평균 1.6건에 비해 37.5% 증가한 수치다. 특히 당사자 신청 없이 감사 부서 직권 면책 심사 비율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29.8%에 불과했던 직권 심사 비율은 45.5%로 뛰었다.



사진 설명


경찰청 적극행정면책제도 운영규정에 따르면 물리력 행사로 감사 대상에 오른 경찰관에 대해 감사 부서는 직권으로 면책 심사를 할 수 있다. 면책 인용을 폭넓게 인정해 경찰관의 적극적 물리력 사용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불법 집회 시위에 대한 공권력 강화 움직임도 포착됐다. 경찰은 올해 치안 성과 지표에서 ‘국가인권위 권고 수용도’를 정량 지표에서 삭제했다. 관행적으로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던 사례 역시 크게 줄었다. 인권위 권고 수용률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96.1%였지만 지난해 8월부터 12월 57.1%로 뚝 떨어졌다. 실제 지난해 12월 서울 수서경찰서장은 C 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에게 직무 교육을 시행하라는 인권위 권고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고 회신했다. 인권위는 C 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이 시위 중이던 금속노조 지회장 D 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해 지난해 5월 직무 교육을 권고한 바 있다. 경찰이 감사 기능을 개선한 것은 올해 치안 목표로 내세운 적극적 법 집행을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온라인 게시물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해 8월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 경찰특공대원과 전술 장갑차가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다만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현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체 감사 기능 개선을 넘어 법적 면책 기반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찰관은 범인을 제압하다가 다치게 하거나 숨지게 했을 경우 형사 책임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소송을 당한 경찰관이 정상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경찰 조직 차원의 법률 지원 등 물리력 사용에 대한 부담을 덜어줄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