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 대선 공화당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머쥐면서 11월 대선 본선행 티켓 확보에 바짝 다가섰다. 당초 13명에 이르던 공화당 후보들이 줄줄이 중도 하차를 선언했으며 ‘트럼프 저격수’로 떠오르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마저 뉴햄프셔 패배로 사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경선 일정이 한참 남은 상황에서 중도·무당층 유권자들이 투표에 대거 참여한 뉴햄프셔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자 “트럼프의 자질 논란을 종식시킬 원투 펀치(월스트리트저널·WSJ)”라는 호평까지 쏟아졌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사실상 유일한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거친 공세를 이어가며 4년 만에 백악관 탈환에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빠르면 3월 본선행 티켓 확정
23일(현지 시간) 미 NBC뉴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기 위해서는 전체 대의원 2429명 중 ‘매직 넘버’ 1215명의 표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 대선 경선은 간접투표제로 유권자가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면 그 주에 배분된 대의원들이 7~8월 전당대회에서 후보에게 투표하는 방식이다.
주별로 대의원이 배분되는 방식은 승자 독식, 비례 배분, 하이브리드로 나뉜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 40명의 대의원이 있는 아이오와에서 득표율에 따라 20명을 확보했고 총 22명인 뉴햄프셔에서도 최소 11명 이상의 대의원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네바다·버진아일랜드(2월 8일), 사우스캐롤라이나(2월 24일), 미시간(2월 27일) 등으로 경선이 이어지는데 헤일리 전 대사의 고향인 사우스캐롤라이나마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2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WSJ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3월 19일이면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수를 확보하게 될 것으로 앞서 전망했다. 이는 텍사스·캘리포니아 등 16개 주에서 동시에 경선이 열리는 ‘슈퍼 화요일(3월 5일)’을 고려한 것으로 이날 결정되는 총 874명의 대의원 중 대부분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분노의 표심 읽은 트럼프
91개 중범죄 혐의로 얼룩진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경선을 지배하는 것은 확고한 지지 기반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그룹의 열정적 지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과 범죄, 전쟁 및 국경 혼란 등에 지친 공화당 중도층이 결집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의 물가는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민자 폭증으로 뉴욕과 시카고 등 대도시 기능이 마비됐으며 밖으로는 ‘두 개의 전쟁’이 벌어져 미국이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회에 참석한 미란다 블레어 씨는 “어느 때보다 돈을 열심히 벌고 있지만 집은 결코 살 수 없고 렌트비를 지금처럼 많이 낸 적도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같은 미국인들의 분노를 명확히 포착해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도대체 베이컨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물가)” “세금을 저당 잡히지 않을 것이다(우크라이나 전쟁)” “우리는 국경을 봉쇄할 것이다(이민)” 등의 발언에 유권자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트럭 운전사인 스티븐 랭곤 씨는 이날 투표소 앞에서 “트럼프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도 하차한 경쟁 후보를 향해 “대단한 사람”이라 치켜세우고 확실한 지지율 우세 속에서도 표 단속을 꼼꼼히 하는 등 4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신중한 태도 역시 경선 승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목표는 바이든, 리턴매치에 올인
헤일리 전 대사가 이날 경선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자신이 8년간 주지사를 맡았던 사우스캐롤라이나마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빼앗길 경우 공화당의 경선 레이스는 ‘트럼프 독주 체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의식한 듯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캠프는 이날 ‘이 경기는 끝났다(THIS RACE IS OVER)’는 문자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발송했다.
더 이상 경선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조기 대선 경쟁에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경선 유세 과정에서도 “최악의 대통령인 바이든이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며 ‘바이든 심판론’을 부각하는 데 공을 들였다. 또 “바이든의 연설은 3분밖에 되지 않는다. 연료가 오래가지 못한다”면서 고령의 나이를 조롱하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본선 상대인 바이든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를 더 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3지대 후보’들이 대선에 참여하는 다자 대결이 이뤄질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더 불리한 것으로 조사돼 민주당 선거 캠프는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버드대 미국정치연구소(CAPS)와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가 17~18일 등록 유권자 23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양자 가상 대결 시 지지율은 각각 41%와 48%로 7%포인트가 차이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양자가 아닌 다자 대결 구도로 갈 경우 이 격차는 11%포인트까지 확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