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기사·택배·프리랜서…노동권 판결 쏟아지는데, 제도는 ‘하세월’

택배노조 교섭 거부 부노행위 판단
작년 말 타다기사, 첫 근로자성 인정
넓은 의미 플랫폼 종사자, 300만명
보호 방안 두고는 노사정 해법 이견

서울 시내에서 배달 라이더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기존 법과 제도 내에서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해 노동권 사각에 있던 근로자를 보호하는 판결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은 급격하게 팽창한 플랫폼 종사자의 보호 필요성에 맞춰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이들을 제대로 보호할 법과 제도 논의는 판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5일 노동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전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과 단체교섭 인정 소송에서 다시 패소했다. 이 소송은 2020년 전국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중노위는 교섭 거부가 부당하다고 피해구제를 요청한 택배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CJ대한통운은 이 판정을 따를 수 없다며 법원에 소를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패했다. 이 소송의 쟁점은 원청(CJ대한통운)이 아니라 택배대리점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택배노조이 원청과 교섭권을 인정하느냐였다. 법원은 노조의 교섭요구사항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인 결정권이 있다고 보고 원청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사용자의 지위로 인정했다.


작년 12월 차량호출 플랫폼인 타다의 운전기사가 법원으로부터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은 것도 노동권 강화의 대표적인 판결이다. 지난달 21일 서울고법은 타다 운영사와 중노위가 벌인 부당해고 구재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중노위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도 계약 종료를 당한 한 타다기사가 부당해고라며 중노위에 피해구제를 요청하면서 촉발됐다. 중노위가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로 인정하자 타다 운영사는 이 판정에 불복 소송을 냈다. 1심은 이겼지만, 2심은 졌다. 고법은 근로자로 판단하는 기본 요건인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위와 감독이 있었다고 봤다. 당시 노동계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성을 법원이 처음 인정했다며 크게 반색했다.


이달 한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일하던 방송국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이겨 복직한 사례도 노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아나운서는 2019년 계약 만료 통보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이 아나운서는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간 끝에 당시 계약만료 통보가 부당해고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아나운서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상 근로자로 인정받으면서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은 것이다.





플랫폼 종사자는 급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2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 실태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종사자(15~69세)는 약 80만 명으로 전년 대비 3% 증가했다. 이들을 포함해 플랫폼으로 단순 중개나 일감을 구하는 넓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는 약 292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9% 증가했다.


우려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 체계가 미흡한 상황에서 종사자 규모는 너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조사에서 플랫폼 종사자의 12.9%(10만 3000명)는 현재 플랫폼 일자리가 첫 일자리라고 답했다. 첫 일자리는 근로자의 향후 일자리, 근로 의욕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고용 정책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근무 관련 계약 없이 일하는 비중(계약 미인지 포함)은 63.4%(50만 7000명)에 달했다.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하는 체계를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의 해법이 다르다. 이 때문에 제도 마련 속도도 더디다. 예를 들어 배달 라이더는 배달 건수만큼 돈을 버는 구조인데 기존 노동 법제를 적용하면 수익 체계가 되레 망가질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경영계에서 나온다. 경영계는 이 상황이 배달 라이더만 겪을 문제는 아니라고 우려했다. 앞으로 새로운 직업과 산업이 등장하면 기존과 같은 근로계약으로는 한계가 뚜렷할 것이라고 봤다. 반면 노동계는 플랫폼 종사자를 새로운 법이 아니라 기존 근로기준법 체계 안에서 동등하게 보호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배달라이더는 사고 위험이 큰 업무 환경을 고려해 더 두터운 사회안전망도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을 논의하다가 결론을 내지 못했다. 현 정부도 플랫폼 종사자 보호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정책 성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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