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기 침체 우려로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주요 국가의 통화들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5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필리핀 페소 환율은 24일 기준 미 달러당 56.315페소로 최근 3개월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환율이 상승했다는 것은 페소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의미다. 달러 대비 말레이시아 링깃(4.7315), 인도네시아 루피아(1만 5713) 가치 역시 3개월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태국 밧과 한국 원, 호주 달러 등도 새해 들어 3~4%씩 하락하며 같은 기간 유로(1.4%)나 영국 파운드(0.03%)보다 약세를 나타냈다.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일제히 떨어진 것은 중국 경기 침체로 인한 매도세가 집중된 탓이다. 아시아 국가 통화는 중국 경기가 가라앉으면 팔리는 경향이 강하다.
니시하마 도오루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호주는 석탄과 철광석, 필리핀은 전자기기, 태국은 관광 등 각국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 산업이 중국 경제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아시아 국가 상당수는 중국 수출에 의존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시아 주요 국가의 중국 수출 비중은 2022년 기준 호주가 30%,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20% 이상이다. 10% 미만인 미국·독일·영국 등과 비교해 상당히 큰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5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하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달러 강세도 아시아 통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연초부터 미국 경제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통계가 잇따르면서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은 식어가는 분위기다. 이에 달러 매수가 이어지면서 신흥국 통화의 상대적인 약세를 가속화하는 현상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아시아 주요국들이 경기 침체 우려로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통화 가치 추가 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 닛케이는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불투명한 가운데 경기 부양을 위한 조기 금리 인하가 아시아 국가에서 실현되면 통화 약세가 더 진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 근거로 한국은행이 1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 문구를 삭제한 점, 호주의 지난해 12월 고용자 수가 5개월 만에 감소한 점, 태국의 신임 총리가 중앙은행에 정책금리 인하를 요구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