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국내 증권사 리서치 보고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했던 독립리서치 제도화가 ‘공수표’로 전락할 조짐이다. 지난해 연이은 주가조작 사태에 우선순위가 밀린 데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책의 초점이 투자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바뀌면서다. 올해 코스피가 7% 하락한 와중에도 매도 보고서는 0.2%에 불과해 신속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0월을 마지막으로 독립 리서치 제도화를 목적으로 출범한 리서치 관행 태스크포스(TF)의 작업을 유보한 상태다. 금감원은 독립 리서치 회사들에 지난해 말까지 관련 제도안을 내놓겠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역시 무기한으로 밀렸다.
앞서 금감원이 ‘2023 업무계획’에 독립 리서치 제도화를 명시하고 이복현 금감원장이 지난해 3월 “국내 증권사 리서치 보고서 객관성 제고가 오랜 과제였던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한 것이 무색한 상황이다. 독립 리서치 제도화는 그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으로 꼽혀왔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 센터들이 법인 영업을 겸하고 있어 고객인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솔직한 매도 의견을 내기 어렵고 이에 따라 국내 증시의 신뢰성도 하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소시에테제네랄(SG)·영풍제지발(發) 주가조작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독립 리서치 제도화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정책 추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보고 있다. 특히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공매도 금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등 투자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정책으로 초점이 옮겨 간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 독립 리서치 회사 관계자는 “의견 수렴 등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난해 관련 제도안이 나오지 않았다”며 “업계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독립 리서치에 대한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지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 코스피지수가 약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매도 보고서는 0.2%에 불과해 독립 리서치 제도화에 대한 필요성은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24일까지 국내 증권사가 발간한 1157개의 보고서 중 매도(비중 축소) 의견은 3개로 전체의 0.2%에 불과하다. 매수(비중 확대)가 93.4%(1082개)로 절대 다수였고 중립이 6.4%(74개)로 두 번째로 많았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2655.28에서 2470.34까지 6.9% 추락했다.
국내에서 영업하는 61개 증권사 중 단 한 번도 매도 보고서를 내지 않은 곳도 올해 1분기 기준 68.9%(42개)에 달했다. 그나마 미래에셋증권과 하나증권 등이 매도 의견을 냈으나 전체 보고서 중 매도 비율은 각각 0.6%, 0.5%에 그쳤다. 같은 기간 골드만삭스(16.7%)나 모건스탠리(16.4%) 등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보고서 비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총선 등의 영향으로 독립 리서치 제도화가 이대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금감원 측은 “리서치 관행 TF는 충분한 의견을 수렴해 중단한 것”이라며 “독립 리서치 제도화를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고 올해 안으로 제도안을 발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