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에 사는 커플 카밀 게매라와 디에고 갈라르도는 지난 9일(현지 시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얼어붙었다. 생방송 스튜디오에 괴한이 침입해 총기를 들고 위협을 하는 장면이 그대로 송출된 것이다. 위협을 느낀 디에고는 열 살 짜리 아이를 데리러 즉시 학교로 향했다. 집에 남아 있던 카밀은 디에고로부터 곧 학교에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곧이어 아들에게서 아빠가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몇 분이 지나 초조하게 기다리던 카밀이 받은 연락은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갱단이 무차별적으로 쏜 총에 디에고가 맞았다는 소식이었다. 이후 과야킬이 정부에 의해 봉쇄되면서 카밀은 디에고를 찾을 수 없었다.
마약으로 뒤바뀐 평화의 섬
한때 에콰도르는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지인 페루와 콜롬비아 사이에 위치해 ‘평화의 섬’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비교적 안전한 나라에 속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에콰도르는 이들 나라에서 재배 및 가공된 마약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데 핵심 경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과야스주의 주도이자 해양에 인접한 서부 도시 과야킬에서 마약 카르텔이 활개치면서 소요 사태가 날로 늘어났다.
이들 카르텔은 병원과 몰, 학교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방송사까지 습격해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습격을 실시간으로 보여준 것은 소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군대도 타깃 삼는 마약 카르텔
지난해 11월 취임한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이달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요 카르텔 22곳을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군과 경찰을 상대로 대테러 작전 수행을 지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무장한 군대조차 이들 카르텔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 카르텔이 국가 공권력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할 수 있는 배경에는 국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갖출 자금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남미 각지에서 생산된 마약 유통 과정에서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에만 에콰도르 경찰 당국이 확보, 압수한 코카인만 170톤에 달한다. 이에 마약 카르텔은 보복성 테러로 경찰과 군대를 표적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 지원 방안 검토
정부의 긴급 비상사태 선포에도 마약 카르텔의 소요 사태가 끊이지 않자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추가적인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달 초 크리스토퍼 도드 미주 특별 보좌관과 로라 리처드슨 미 남부 사령관을 에콰도르에 급파에 상황을 파악해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순방을 통해 미 정부에서 2만여개의 방탄조끼와 구급차, 지원 차량 등 장비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관계자는 “앞으로 30일 간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데 어떤 것이 필요한 지를 파악할 것”이라며 “장비를 보내는 것 이외에 인력 배치도 검토하고 에콰도르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