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만의 우승을 이루겠다는 포부로 나섰지만 당장 16강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졸전을 거듭한 클린스만호가 고국 이탈리아의 유로 2020 우승을 일궈낸 ‘명장’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을 수 있을까.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대표팀은 31일 오전 1시(한국 시각)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사우디와 16강전을 치른다. 한국이 E조 2위(1승 2무)로 조별리그를 마친 가운데 사우디가 F조 1위(2승 1무)를 하면서 두 팀이 8강 진출을 다투게 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 한국은 이번 대회 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손흥민(토트넘)·이강인(파리 생제르맹)·김민재(바이에른 뮌헨)·황희찬(울버햄프턴) 등 세계 최고의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돼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960년 2회 대회 이후 64년 만의 왕좌 탈환에 나섰다.
하지만 조별리그 3경기를 마친 뒤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줄었다.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세 팀을 상대로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3경기 모두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동점 또는 역전까지 허용했다. 25일 축구 통계·기록 전문 매체 옵타에 따르면 한국의 우승 가능성은 전체 5위(11%)로 내려갔다. 일본(18.2%)을 비롯해 카타르(16.8%), 호주(14.7%), 이란(12.2%)에도 밀렸다.
특히 25일 말레이시아(130위)와의 최종전(3대3 무)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FIFA 랭킹에서 무려 107계단이나 낮은 상대에 3골이나 내주는 모래알 수비를 노출했다. 한준희 쿠팡플레이 해설위원은 “공격에 집중했을 때 앞으로 올라간 선수들의 수비 복귀 가담이 느려 역습에 취약했다. 수비는 수비수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일관된 간격 유지가 안 됐다고도 볼 수 있다”고 수비의 문제를 지적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동일한 선발 라인업과 개인 능력에만 의존하는 공격 패턴도 문제였다. 한국은 3경기 연속 최전방에 조규성(미트윌란)과 2선에 손흥민과 이강인을 배치했지만 짜임새 있는 공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말레이시아전에서 넣은 3골도 모두 페널티킥 포함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나온 득점이었다. 한 위원도 “필드골을 만들지 못했다는 건 선수 간 효율적 연계로 찬스를 만드는 작업이 부족하다는 의미”라며 “선수 개인 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팀 전체가 개개인의 당일 컨디션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16강전에서 상대할 사우디는 FIFA 랭킹 56위로 한국보다 33계단 낮다. 지난해 9월 영국 뉴캐슬에서 가진 평가전에서도 한국이 조규성의 결승골에 힘입어 1대0으로 승리한 바 있다. 하지만 역대 전적은 5승 8무 5패로 팽팽하고 살림 알다우사리와 무함마드 칸누 등 한 방을 터뜨려줄 수 있는 선수들로 무장했기에 방심할 수 없다. 만약 조별리그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반복된다면 8강 진출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신태용 감독이 지휘하는 인도네시아가 D조 3위(승점 3)로 각 조 3위 중 4위를 확정해 16강행 막차를 탔다. 인도네시아가 아시안컵에서 토너먼트 무대를 밟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