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인류 썩히는 '곰데믹'이 온다

■곰팡이(에밀리 모노선 지음, 반니 펴냄)
흙·우주서도 사는 파괴적 매개체
바나나·개구리 멸종 위기 내몰아
무분별한 교역, 곰팡이 급속 전파
바이러스 넘어 사람 치명적 위협

이미지 생성 AI '달리3'로 제작




바나나는 옥수수, 밀, 쌀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중요한 작물이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바나나 농사에 종사한다. 바나나가 다른 3가지 종류의 작물과 다른 점은 단일 품종이라는 점이다. 물론 바나나에는 수천 가지 품종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바나나는 ‘캐번디시’ 한 품종이다. 캐번디시보다 더 맛이 좋다고 알려졌던 ‘그로 미셸’이라는 품종이 있었다. 하지만 쿠벤세라는 곰팡이가 ‘그로 미셸’을 파괴했다. 그러면 캐번디시 품종은 안전할까. 이미 곰팡이 ‘푸사륨 오도라티시뭄(TR-4)’가 세계의 캐번디시 농장을 위협하고 있다.


신간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원제 Blight: Fungi and the coming pandemic)에서 세계적 독성학자인 저자는 독성 곰팡이들이 어떻게 생명체들을 위험하고 때로는 아예 멸종에 이르게 하는지 그 매혹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면모를 살핀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의 뛰어넘는 ‘곰팡이 펜데믹’을 막아야 한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에는 곰팡이 외에도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등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 책이 곰팡이에 주목한 이유는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다는 점과 함께 이의 끈질긴 생명력이 더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라고 한다. 아직 제대로된 곰팡이 치료제도 없는 게 현실이다.


곰팡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하게 번성하는 생명체다. 최고 600만 종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동물 200만 종, 식물 40만 종보다 훨씬 많다.


저자에 따르면 곰팡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질병 매개체다. 땅 위, 공기 중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물론 백송 소나무에서 개구리, 도룡뇽, 박쥐 등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곰팡이의 생명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숙주 없이도 흙 속에서 여러 해를 견디고 스치기만 해도 숙주의 몸에 올라탈 수 있다. 약물에 대한 내성도 훨씬 강하다. ‘항아리곰팡이’는 모 지역의 개구리를 절멸시켰고 ‘밤나무줄기마름병균’은 미국밤나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칸디나 아우리스’라는 곰팡이는 사람을 숙주로 삼기도 한다.


곰팡이는 지구 역사상 어느 시대에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류의 제한 없는 국제적 이동과 무분별한 동식물 교역에 따른 곰팡이의 전파, 품종 개량으로 인한 다양성 상실, 기후변화 등이 곰팡이 위협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인간이 문제라는 말이다.


저자는 “예방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방을 위해 우리 인간이 세계 전체로 이동하는 동식물에 더욱 주의하고, 먼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또한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고, 서식지 손실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곰팡이 팬데믹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노력도 제시한다. 북극 인근 노르웨이 스발바르섬에 있는 국제종자저장고가 대표적이다. 국제종자저장고는 2006년부터 씨앗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비롯한 각국 종자 은행들은 인류의 미래를 담보하고 있다. 유전자의 저항성을 높이기 위한 유전공학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곰팡이가 우주를 오염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러시아 미르 우주정거장에서는 실제로 곰팡이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정거장은 폐기되었다. 최근 과학자들은 곰팡이가 우주선 외부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고 추측한다. 탐사선을 달이나 그 너머로 보내기 전에 곰팡이 오염을 제거하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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