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를 가리지 않고 연이어 발생한 ‘정치인 테러’에 본격적인 총선철을 앞두고 모방 범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배현진 국민의 힘 의원을 돌로 습격한 중학생 A(15) 군은 평소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여학생을 스토킹 하는 등 주변과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수사 초기 단계인만큼 A 군의 정확한 범행 동기에 대한 규명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치 혐오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상황에서 일종의 ‘학습화된 범죄’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정치 문화 개선과 함께 정치 테러에 대한 강한 처벌 등이 뒤따라야 또 다른 모방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전날 배 의원을 습격한 뒤 현장에서 체포된 A군을 보호자 입회하에 조사한 뒤 임의제출 받은 휴대전화 메시지와 SNS 내용, 범행 전 행적 조사 등을 토대로 진술의 사실 여부를 파악 중이다.
특히 배 의원이 습격받을 당시 비공개 개인 일정을 소화 중이었다는 점에서 A군이 범행을 사전에 계획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발생 2시간 전 연예인이 많이 오는 미용실에 사인을 받겠다고 외출했다가 배 의원을 만나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최근 우울증 증상이 심해져 폐쇄병동에 입원하란 지시를 받고 대기 중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에 사용한 돌도 평소 지니고 다닌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비공개 일정 중이던 배 의원을 상대로 A 군이 배 의원이 맞는지 여러 차례 확인했다는 점 등에서 계획 범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날 A군을 응급입원 조치했다. 응급입원은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자·타해 위험이 있어 사정이 급박한 경우 정신의료 기관에 3일 이내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A 군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우울증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신질환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A군이 다니는 학생들에 따르면 피의자는 평소 여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스토킹을 하는 등 학교 안에서도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정치 테러 행위 자체를 보다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사건은 비정상적인 사고와 함께 정치적인 목적이 학습화 돼 범죄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에는 어린 연령층에 의한 테러도 많이 발생하는 등 정치 혐오가 사회에 만연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한 처벌이 없으면 잠재적 공격자들이 앞으로도 또 다른 테러를 만들어낼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치 테러의 경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라며 “일반 범죄보다 엄격히 대응해야 또 다른 정치 테러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여야 지도자들이 나서 증오와 혐오를 더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선언이 있어야 극성 지지자들의 또다른 범죄 행위가 제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27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구성해 A 군의 휴대전화 메시지와 SNS 내용, 범행 전 행적 조사 등을 토대로 진술의 사실 여부를 파악 중이다. 응급입원 기간이 지난 뒤에는 보호자 동의를 받고 A 군을 상대로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현재 순천향대병원에 입원 중인 배 의원은 이날 피해자 진술 이후 “선처는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신변보호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상으로 운영 중인 '근접 신변보호팀'에 더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에 대해서도 신변보호팀 조기 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A 군은 전날 오후 5시18분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돌덩이로 배 의원의 머리 부위를 여러 차례 공격해 특수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범행 당시 A 군은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죠?” 라고 두 차례 물은 뒤 갑자기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