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친소 관계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마련된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윤 대통령이 법무부와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 친분이 있는 박 후보자를 지명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반응이었다. 박 후보자는 윤 대통령이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초임 검사로 근무하던 시절 옆 부서에서 재직하는 등 윤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박 후보자를 지명한 시점 역시 ‘친윤 법무부 만들기’라는 해석에 불을 지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과 김경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사천(私薦)논란을 고리로 윤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의 갈등이 분출된 직후인 23일 지명됐기 때문이다. 한 비대위원장이 법무부 장관직을 내려놓은 이후 한 달 가까이 ‘차관 체제’를 유지해오다 갑자기 방침을 바꿔 인사를 단행한 것이어서 ‘한동훈 지우기’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 후보자의 첫 출근길에는 ‘검사 시절 인연’, ‘특별한 당부’ 등 박 후보자 본인보다 윤 대통령과 박 후보자 관계에 초점을 맞춘 질문이 이어졌다. 박 후보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뿐”이라며 “(윤 대통령이) 특별한 말씀을 했다기보단 법무·검찰 본연의 업무를 잘 수행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후보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수사하고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 김 여사를 소환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차차 살펴보고 말씀 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사건은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배제된 상태다. 박 후보는 국회에서 재의 표결을 기다리고 있는 쌍특검법에 대해서도 “(앞 질문과) 똑같은 상황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박 후보자의 원칙적인 답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박 후보자의 지명이 한 비대위원장과의 갈등 상황을 고려해 중량감 있는 인물을 앉힌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당초 총선 직전 여야 대치 상황 등을 고려해 당분간 ‘차관 대행 체제’로 법무부를 유지할 방침이었으나 당정갈등이 노출되면서 서둘러 낙점했다는 내용이다. 전직 장관과 대통령 사이의 갈등이 법무부·검찰 조직의 동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 후보자는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1991년부터 검사로 활동하는 등 한 비대위원장(제37회 사법시험)보다 10기수 선배다. 통상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은 ‘기수 파괴’형 인사를 통해 인적 쇄신에 나선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 후보자는 사법시험 기준으로 윤 대통령보다도 6기수 선배다. 다만 나이는 윤 대통령이 세 살 더 많다.
기수와 나이가 엇갈렸음에도 윤 대통령과 박 후보자는 초임 검사 시절부터 오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초임 검사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박 후보자는 대구지검에서 함께 일했다. 당시 박 후보자는 미혼이던 윤 대통령을 종종 자신의 집으로 불러 식사를 대접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돼 대구고등검찰청에서 일할 당시 박 후보자가 대구고등검찰청장이었다. 2017년 박 후보자가 서울고등검찰청장에서 사직할 때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을 맡고 있던 윤 대통령이 퇴임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렇게 윤 대통령과 각별한 인물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이번 인사가 이원석 검찰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염두에 두고 윤 대통령이 가까운 인물을 법무부 수장으로 보냈다는 해석이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하지 않더라도 한동안 법무·검찰의 무게추는 법무부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사법시험 동기’이던 ‘한동훈 체제’와 달리 박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식 임명될 경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의 기수차 상당히 벌어지기 때문이다. 박 후보자는 법조계에서 조직 장악력이 강한 스타일로 알려져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