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대, 무슨법이요? 그런게 있나요"…준비 안된 사업장들 '얼떨떨'

[중대재해법 확대 첫날 현장 가보니…]
철공소·축산시장 돌아보니 전날까지 안전대책 전무
'맨 땅에 헤딩'식 법안 시행…적용 대상 여부도 몰라
"사람 살리자는 법인데 있어야"…긍정 평가도 존재

26일 찾은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상인들이 분주히 고기를 옮기고 있다.장형임기자

"중대..무슨 법이요? 그게 뭔데요."


"공사장 말고 우리도 포함된다고요? 몰랐는데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전면 확대됐다. 하지만 법안 시행 당일에도 소상공인들은 안전 사고에 대비한 조치를 마련하기는커녕 여전히 자신들이 법안 적용 대상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중소 사업장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7일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은 대목인 설 연휴를 앞두고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분위기였다. 부지런히 고기를 운반하고 도축하는 이들에게 "여기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걸 알고 있느냐"고 묻자 입을 모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7~8명이 일하는 축산업체의 대표 A씨는 "(확대 시행에 대해) 전혀 몰랐다"면서 구체적인 법안 내용과 처벌 수위를 되물었다. 그는 "따로 공문을 받은 것도 없고 주변에서도 들은 적이 없다. 일이 끝나면 한번 확인해봐야겠다"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축산업체 대표인 40대 B씨도 "무슨 법이 시행된다고요"라며 반문한 뒤 "몰랐는데 무슨 안전 대책을 마련했겠냐. 이 골목에서 제일 어린 편인 내가 모르면 여기서 (법안 시행을) 아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B씨는 연신 칼질을 하며 "'손 조심해라, 미끄럼 주의해라' 말하는 것 말고 사장이 뭘 할 수 있냐"면서 "그런 법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우리한테 책임을 묻는다니 말도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밖에 20여명이 상시 근로 중인 한 대형 축산업체의 중간 관리자 C씨도 "무슨 내용의 법인지는 알지만 지금까지 대표에게 전달받은 추가적인 안전 관리 지침은 없다"고 말했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철공소에서 작업자 셋이 힘을 모아 겨우 스테인리스 철판 1장을 옮기고 있다.정유민 기자

철공소가 즐비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역시 어떠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분위기였다. 고막을 찢는 듯한 절단기 소리와 날리는 분진 속에서 파이프를 옮기던 60대 강 모씨는 “사고로 사장님이 구속되면 우리 모두 해고되는것 아니냐. 가뜩이나 철공소도 경기가 안 좋은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적용 대상이 전면 확대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노동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확대 시행으로 대형 공사장 외에 사고 위험이 높은 축산업체·철공소는 물론이고 동네 빵집·카페·음식점 등 약 83만 7000곳의 사업장이 법안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2년의 유예기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충분한 홍보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준비가 덜 된 사업체들이 줄줄이 폐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이번 법안 확대 시행이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날 문래동 철공소에서 만난 작업자 D씨는 “법이 생기면 우리의 안전을 좀 더 신경 써주지 않겠냐”면서 “큰 사고가 그렇게 쉽게 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살리자는 법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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