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드노믹스가 인기없는 이유[김흥록 특파원의 뉴욕포커스]

경제 호조에도 유권자 호응 낮아
미래 불안·정치 환멸 등 원인 꼽혀
美유권자 외면 요인, 韓서도 심각
‘내일은 더 나을 것’ 비전 제시가 1순위


최근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4.9%나 오르더니 4분기에도 성장률은 3.3%에 이르렀다. 미국 의회예산국이 제시한 미국의 잠재성장률 1.8%를 한참 웃도는 수준이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은 둔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은 전년 대비 2.6%를 기록해 2022년에 기록한 정점 6.8%에서 4%포인트 이상 둔화됐다. 선진국에 진입하면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한다는 기존 공식을 상기하면 놀라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물가가 안정되고 경제는 힘차게 달리고 있는데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이상하리만큼 인기가 없다. 라스무센리포트가 지난주 공개한 설문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바이드노믹스가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44%는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된다’고 악평했고, 23%는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 1992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라는 선거 캠페인이 먹힌 후 그동안 경제는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혔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첫째, 지표에서 나타나는 경제 호조와는 별개로 미국인들은 실제 일상에서 먹고살기 고단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물가상승률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실제 물가가 2019년 수준으로 낮아진 것은 아니다. 2020년 뉴저지의 한 쿠바 음식점에서 17달러에 팔던 닭가슴살구이는 현재 22달러로 올랐다. 마트에서 파는 냉동삼겹살은 같은 기간 파운드당 5달러에서 현재 9달러까지 치솟았다. 고물가 행진은 현재 진행형이다.


또 다른 원인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좌절감에 있다. 국가 경제의 화려한 성적표와는 별개로 나 개인의 경제적 지위가 나아질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만큼 부를 축적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인공지능(AI)이나 지정학적 갈등 탓에 직업적·경제적 전망도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와 건전한 사회적 담론 실종 등 정치에 대한 환멸로 인해 유권자들이 경제 호조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만약 미국인들이 바이드노믹스를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가 첫 번째 원인, 즉 체감 물가가 높기 때문이라면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다. 지난해 1월부터 미국 근로자들의 임금이 물가보다 더 빨리 오르고 있어 점차 체감 물가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바이든 캠프가 기대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와 달리 계층 이동 사다리가 없다는 좌절이나 정치 양극화에 대한 환멸 때문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는 것이라면, 이는 시간에만 맡길 수 없다. 미국 정치권이 정치 문화를 바꾸고 사회구조 개혁을 핵심 의제로 추진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하는 바이드노믹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신은 미국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직면한 문제를 우리나라에 대입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4분기 GDP 성장률은 0.6%로 8분기 연속 0%대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2월 전년 대비 3.2%나 올라 같은 기간 미국 PCE보다 높다. 수치로만 봐도 한국인의 먹고살기가 미국인보다 더 팍팍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투명한 미래다.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숫자가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 양극화도 결코 미국보다 덜하지 않은 것 같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미래가, 또 나라의 내일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규제 혁신을 통해 기업들이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저숙련 근로자부터 자영업자·중산층들이 계층 이동의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안겨줘야 한다. 근본적이며 획기적인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어떤 정치권력도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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