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공개 로드맵의 중요성

이은주 한국IBM 사장


최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와 조만간 개최될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등 연초는 IT 기업들이 갈고닦은 신기술을 선보이는 시기다. 지난 수년간의 연구개발(R&D)이 과연 어떠한 제품 및 솔루션으로 탄생할지 기대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치 패션계에서 패션쇼를 통해 수개월, 간혹 수년 이후에 출시될 의상의 트렌드를 제시하듯 이러한 행사에서는 보통 미래 지향적인 기술을 선보이게 된다.


실제 소비자들은 이미 내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과 솔루션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될 것인지, 신제품이 나오지는 않을지에 대해서도 굉장히 궁금해한다. 마치 갤럭시와 아이폰이 매년 신기종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아닌 기업들은 자사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 및 솔루션에 대해 더욱 장기적인 계획을 알고 있어야 그 고객 기업도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즉 로드맵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각 기업들은 대부분 고객사와 협업하는 부서에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로드맵이 어떻게 되는지 공유할 것이다. 그런데 이 로드맵이 공개된 정보가 아닐 경우 100% 신뢰하기 어려울 수 있고,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인프라 투자나 비즈니스 계획과 같은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인공지능(AI)과 같은 신산업이 더욱 각광받을수록 오랜 전통 산업에 대한 사업 중단 우려가 생길 수 있다.


일례로 IBM은 110년이 넘은 오래된 역사를 가진 기업이기에 사업 포트폴리오가 시대에 맞게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지금의 IBM은 하이브리드와 AI 기업이기에 전통 산업인 하드웨어 제품 및 솔루션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경우 더 이상 하드웨어 부문 지원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IBM은 연구 조직인 IBM리서치에서 향후 3년간의 연구 계획과 목표 달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테크놀로지 아틀라스라는 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각 로드맵은 전략 목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왜 중요한지, 무엇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심지어 어떤 인프라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지까지 설명한다. 가까운 미래를 현실적으로 상세하게 예측하기 때문에 파트너와 고객이 이러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로드맵을 공개한다는 것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로드맵은 기술 개발이 어떠한 단계로 이뤄지고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명확한 계획이 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술력과 인재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를 모두에게 알린다는 것은 곧 기업 고객과 일반 대중에 대한 약속이다. 소비자향 기술이 아니더라도 한 기업이 무언가를 약속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무언가를 공표하는 것이 기술 기업에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마 많은 임원분들도 공감하실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로드맵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기업이 많아질수록 전체적인 IT 업계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