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기업들이 ‘법 적용 유예’를 절박하게 호소하는데도 국회가 유예 법안을 처리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 5인 이상 사업장에 확대 적용되기 시작했다. 당장 고용노동부는 해당 사업장 전체에 대한 안전 진단 작업에 돌입했다. 중대재해법은 상시 근로자가 5인 이상이면 소규모 건설 업체, 동네 식당·빵집·카페 등에 모두 적용된다. 83만여 업체, 약 800만 명의 근로자가 중대재해법의 영향권에 새로 들어간다. 대응 여력이 부족한 일부 영세 업체들은 생존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는 애매모호하고 과도한 처벌 규정 등 중대재해법이 가진 결함 탓이 크다. 이로 인해 당국도 실제 재해 발생 시 쉽게 결론내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일례로 부산·울산·경남에서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이 현재 수사 중인 중대재해 사건 59건 중에서 28.8%에 달하는 17건은 수사만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촘촘하지 못한 데다 불명확한 규정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장기간 사법 리스크에 노출된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83만 명이 넘는 영세기업 대표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경영이 불안하면 신규 직원 채용을 꺼릴 뿐 아니라 규제를 피하기 위해 기존 직원도 줄일 수밖에 없다. 법 확대 시행 후 연간 1만 1000명씩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데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옥상옥 조직인 산업안전청 신설 등 무리한 조건을 내걸어 중대재해법 2년 유예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아직 마지막 희망은 남아 있다. 국민의힘은 25~30인 미만 사업장으로 유예 대상을 줄이고, 유예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는 절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다음 달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법 조정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중재 의지를 밝혔다. 여야는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와 관련해 3년 유예 방안으로 절충점을 찾았듯이 중대재해법 유예에 관해서도 타협안을 만들어 통과시켜야 한다. 시행 유예가 또 불발된 뒤 문을 닫는 영세기업들이 속출하면 거대 야당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