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0억 원 투자금 '잭팟'…韓 AI반도체 기업에 돈 몰린다

리벨리온, 시리즈B 라운드 투자 유치
1650억 원, 이례적으로 큰 규모 투자
AI 연산 특화 NPU 개발에 상용화까지
퓨리오사AI, 사피온에도 투자 '뭉칫돈'

인공지능(AI)으로 작동하는 로봇과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는 이미지. 서울경제DB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 스타트업 리벨리온이 1650억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이번 투자에는 세계적인 국부펀드인 싱가포르 국부펀드의 투자 자회사인 파빌리온 캐피탈을 비롯해 다수의 국내외 기관이 참여했다. 이번 투자 유치로 리벨리온의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2800억 원이 됐다. AI반도체 업계에서는 리벨리온 외에도 퓨리오사AI와 사피온 등이 지난해 수백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정부가 국내에 조성하려는 세계 최대 규모 ‘메가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인 팹리스 생태계 생성이 가속화되는 국면이다.


리벨리온은 약 165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라운드(사업 확장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단계) 투자를 유치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투자에는 기존 전략적 투자자(SI)인 KT를 비롯해 신규 SI로 KT클라우드와 신한벤처투자가 참여했다. 시리즈A 라운드(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단계) 투자 때 참여했던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파빌리온 캐피탈과 프랑스 코렐리아 캐피탈, 일본 DG 다이와 벤처스 등 다수의 해외 투자자가 참여했다.


국내 투자 기관으로는 △KDB산업은행 △노앤파트너스 △KB증권 △KB인베스트먼트 △SV인베스트먼트 △미래에셋벤처투자 △미래에셋캐피탈 △IMM인베스트먼트 △KT인베스트먼트 △서울대기술지주 △오아시스PE △경남벤처투자 △SDB인베스트먼트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번 투자 유치로 리벨리온은 법인 설립 3년 반 만에 2800억 원에 달하는 누적 투자금을 확보하는 기록을 썼다. 투자 유치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시리즈B 라운드 때 1650억 원을 조달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큰 규모다. 벤처 투자 정보 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시리즈B 라운드 투자 금액은 129억 원이다.



리벨리온 로고와 AI반도체. 사진 제공=리벨리온

2020년 9월 박성현 대표가 설립한 리벨리온은 AI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스타트업이다. 금융 회사를 위한 AI반도체 ‘아이온’을 2021년 출시했고 2023년에는 데이터센터를 위한 AI반도체 ‘아톰’을 출시했다. 아톰은 같은 해 5월 KT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됐다. 리벨리온은 미국 기술 기업 IBM과 생성형 AI 데이터센터 고도화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와 함께 거대언어모델(LLM)을 겨냥한 차세대 AI반도체 ‘리벨’을 개발하는 등 신제품 개발과 사업 확장에 두루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는 미국 팹리스 기업 엔비디아다. AI 개발은 데이터 센터 내 다수의 반도체를 활용해 AI가 ‘기계 학습(머신러닝)’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때 사용되는 반도체 90% 가량을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점유한다. 애초에 GPU 시장 선두 기업이었던 엔비디아는 AI 개발 붐이 일자 동시에 많은 계산을 하는 병렬 연산에 특화된 GPU를 AI 연산에 특화된 방식으로 조정했다. 다수의 AI 개발 기업은 전반적인 성능이 앞서는 엔비디아 GPU를 활용해 AI 개발과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리벨리온이 개발하는 AI반도체는 신경망처리장치(NPU)다. 애초에 그래픽 처리를 위한 반도체로 설계된 GPU보다 병렬 연산을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전력 소모를 낮추는 것도 목표다. AI 개발은 다량의 반도체를 활용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가 크게 일어나 개발 비용 또한 증가한다. 리벨리온은 글로벌 반도체 벤치마크(성능 평가) 대회의 일부 분야에서 엔비디아에 앞서는 성과를 냈다.


국내 AI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는 가속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한국 AI반도체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는 7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고 사피온은 600억 원을 조달했다. 이들 모두 스타트업 업계의 통상적인 투자 유치 규모를 웃돈다. 퓨리오사AI의 경우 지난해 AI의 일종인 컴퓨터 비전을 위한 반도체 ‘워보이’ 를 개발했는데 이 제품은 삼성전자에서 위탁 생산한 첫 번째 AI 전용 반도체다. 사피온은 시리즈A 라운드에서만 600억 원을 투자받으며 추정 기업 가치가 5000억 원에 달한다.


이 같은 투자 유치 바람은 국내 팹리스 생태계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정부는 2047년까지 622조 원의 민간 투자를 통해 경기 남부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클러스터의 핵심은 삼성전자와 같이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파운드리와 생산에 필요한 소재·부품·장비를 공급하는 ‘소부장’ 업계,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잇는 디자인하우스 간의 유기적인 연결이다. 미래 반도체로 각광받는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잇따르며 관련 생태계도 본격 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성규 리벨리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투자자들이 1650억 원이라는 큰 규모의 투자를 결정해줘 한국의 간판 AI반도체 기업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미국·일본 등 글로벌로 무대를 확장하고 차세대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신성규 리벨리온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진 제공=리벨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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