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여성의 낙태권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작업이 첫 발을 뗐다. 아직 남은 절차가 많지만 개헌에 완료될 경우 프랑스는 전세계에서 낙태권을 헌법으로 인정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된다.
CNN 등은 30일(현지 시간) 프랑스 하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명시한 헌법 개정안 초안을 가결했다고 보도했다. 하원 의원 중 493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30명은 반대했다. 개정안은 헌법 제34조 법률 규정 사항에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 골자다. 하원의 문턱을 넘은 개정안은 다음 달 상원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프랑스의 이번 개헌 시도는 최근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낙태권이 퇴보 흐름을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 받는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2년 임신 약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서도 낙태권을 제한하는 조처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1975년 낙태죄를 폐지한 후 일반 법률로 낙태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낙태권을 법률로만 보장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릭 듀퐁-모레티 프랑스 법무부 장관은 “미 대법원의 결정으로 상기할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명백히 지녔다고 믿는 필수적인 권리가 휩쓸려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는 그 어떤 중요한 민주주의조차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본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는 세계 여성인 날인 3월 8일 맞춰 헌법 개정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보수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원을 통과할 수 있을지부터 불투명하다. 공화당 소속 제라드 라르셰르 상원의장을 비롯한 보수 의원들은 “프랑스의 낙태권이 임박한 위협을 받고 있지 않다”며 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은 상원이 통과한 후 양원 합동 특별회의에서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마지막 절차 역시 거쳐야 한다.
프랑스 정부와 여당은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상원의 승인을 촉구하고 있다. 개정안을 담당하는 기욤 구피에-발렌테 의원은 CNN에 “우리는 프랑스에서 낙태할 권리를 가능한 한 가장 강력하게 보호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집에 이미 화재가 났을 때 보험에 가입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오로레 베르제 프랑스 여성부 장관은 “이 법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라며 “세계적으로 낙태권이 악의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일이 프랑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법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