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지원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형평성’과 ‘효율성’인데, 기준도 없는 효율성이라는 잣대만으로 누군 살리고 누군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 답답한 심정입니다. 그리고 연구에만 집중한 우리 기업이 왜 그 대상인지 억울하기 까지 합니다”
최대 50% 삭감된 중소기업 R&D 지원 예산에 기업들이 충격에 빠진 가운데 정부가 보완 대책을 내놨지만 업계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예산 삭감 대상인 4134개 기업 중 일부 사업의 복구로 1657개 기업들이 구제를 받았지만 2477개 기업은 결국 지원 금액이 삭감되면서 형평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31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중소벤처 R&D 미래전략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참석해 부처간 협의를 통해 마련된 R&D 협약변경 후속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중소기업 R&D 예산으로 지난해 1조7701억 원보다 4493억 원(25.4%) 줄어든 1조3208억 원을 책정했다. 삭감액 대부분이 계속과제 예산으로 배정되면서 2~3년 간 정부 지원 자금으로 R&D 과제를 수행했던 기업에 불똥이 떨어졌다. 당초 협약과 달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예산을 줄이면서 벤처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이에 중기부가 이날 보완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번 방안에 따르면 우선 일반회계에 해당하는 ‘창업성장기술개발’(팁스), ‘기술혁신’ 등 2개 사업은 기존에 확보된 예산을 활용해 종료 과제를 감액하지 않고 100% 지원하기로 했다. 올해 사업비 75~80% 반영된 2개의 유지 사업은 기존 확보된 예산(2023년 대비 1485억 원 증액)을 활용해 당초 계획대로 대상 기업인 1657개사에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폐지되는 20개 사업, 2477개 기업들은 결국 2054억 원 규모의 자금 부족에 당초 지원 예산의 절반만 받게 됐다. 중기부는 이에 이들 기업에 대해 지난해 사업비 중 미지급분에 대해 협약변경 여부와 관계없이 우선 지급하고, 협약변경 의향서 제출만으로도 신속히 지급하기로 했다. 또 감액 기업이 R&D를 계속 이어나가기를 희망하는 경우 3년 간 무이자 수준의 융자를 지원한다. 협약 대비 부족 금액에 대해 감액분의 최대 2배까지 3년간 5.5%의 이자를 감면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5000만 원 감액 시 최대 1억 원 까지 3년간 5.5%의 이자인 총 1650만원을 감면 받게 된다. 또 자체 담보 여력이 없는 기업도 무이자 수준의 융자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술보증기금의 특례 보증을 함께 진행한다.
이밖에 협약변경 없이 R&D 중단을 희망하는 경우 참여제한 등 제재조치를 면책하고 기술료 납부도 면제한다.
중기부는 이번 보완방안을 토대로 다음 달 부터 기업별 안내를 진행하고 협약변경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 보완방안에 대해 중소기업계에서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가까스로 구제를 받은 기업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지만 결국 예산이 삭감된 기업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A씨는 “R&D 지원금이 다시 복구 되면서 한 숨 돌리게 됐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당장은 다행이지만 내년에 또 예산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불확실성이 커 다른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올해 폐지된 사업인 상용화기술개발사업(소부장)에 지원해 지난해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온 B기업 대표는 “이번 대책은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R&D를 알아서 접거나, 계속 하려면 대출을 받으라는 내용인데 일방적으로 약속을 깬 정부가 내놓은 대책치곤 옹색한 수준”이라며 “아무리 저금리 대출이라해도 대출은 결국 빚이고, 빚이 있으면 다른 곳에서 투자를 받기도 어려워 진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왜 우리 기업이 예산 삭감 대상인지, 살아남은 기업들은 어떤 이유로 구제를 받게 됐는지 사업간 형평성 기준이 궁금하다”며 “정부가 기업의 R&D 진행 상황과 관계 없이 강제로 한 칼질에 많은 기업들의 성장동력 엔진이 꺼지게 됐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국내 R&D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추가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이 사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R&D 지원이 계속 될 것이라는 신뢰가 중요하다”며 “믿음을 준다는 차원에서 이번 대책과 함께 R&D 근본인 기업 연구원 수가 줄지 않도록 세제 혜택이나 병역 특례 등 다양한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