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의 낮은 지지율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4월로 예정된 정치·경제·외교 이벤트의 성과에 따라 정권 존립의 기로에 서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민당이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내각 지지율을 기록 중인 기시다 총리는 방미(訪美)와 금융정책 전환, 보궐선거 등을 통해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자금 스캔들과 파벌 해산으로 혼란한 집권 자민당에서 구심점을 확보하는 일에도 전력투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통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는 물론 내년 중·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다.
3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1월 정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27%로 역대 최저였던 전월(26%)과 큰 차이가 없다. 내각 지지율에서 총리 소속 정당(자민당) 지지율을 뺀 수치를 ‘총리 프리미엄’으로 보는데 현재 기시다 내각의 경우 이 수치가 마이너스인 상태다. 그만큼 정권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정권 출범 직후인 2021년 10월 내각과 자민당 지지율은 각각 58%, 51%였다.
내각 지지율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차관급 줄낙마와 선거용 감세 역풍, 지방선거 패배, 자민당 내 정치자금 스캔들 등이 연달아 터지며 급격하게 추락했다. 약 1년 전만 해도 저출생 대책과 한국과의 관계 개선 등 외교 성과로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닛케이에 “기시다 정권이 만신창이지만 당장 ‘기시다 끌어내리기’가 일어날 상황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예산 심의가 끝나는 3월 이후 총재 선거까지 남은 반년 동안 어떤 성과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남은 반년 중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4월에 몰려 있다. 우선 4월 10일 기시다 총리는 미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난다. 일본 총리가 국빈 대우로 미국을 방문하는 것은 2015년 아베 신조 전 총리 이후 9년 만으로, 상·하원 의회 연설을 검토 중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이 분야에서 강점을 어필해온 만큼 미일 간 안보·경제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낸다는 방침이다.
기시다 정권이 올해의 핵심 어젠다로 제시한 ‘디플레이션 탈출’도 4월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BOJ)이 4월 금융정책회의(25~26일)에서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비롯해 그동안 진행해온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대폭 수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17년 만의 금리 인상은 일본 경제가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인 만큼 기시다 총리로서는 경제 부흥의 성과를 어필할 수 있는 긍정적인 재료다. 기시다 총리는 전날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도 마이너스 금리 해제의 전제 조건인 ‘임금 인상’을 무려 18회 언급하는 한편 연설 시간의 30%를 경제 관련 내용으로 채웠다. 그는 “우리는 오랫동안 일본 경제에 스며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형 경제로 이행해나갈 기회를 손에 쥐고 있다”며 “2024년을 ‘성과를 실감하는 해’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4월 28일에는 중의원 보궐선거가 진행된다. 현재 호소다 히로유키 전 중의원 의장 사망, 다니카와 야이치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직으로 2개 구에서의 선거가 확정됐고 자민당 스캔들로 지역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정치자금 문제로 여당에 대한 불신이 극심한 상황인 만큼 선거 결과에 따라 지지율 반전의 모멘텀을 찾거나 당의 권력 구도가 재편되는 등 기시다 총리와 자민당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는 정치 쇄신을 내걸고 최근 자민당 파벌 해체를 주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내 2·3위 파벌인 아소·모테기파가 해산을 사실상 거부하는 등 내분이 빚어졌다. 파벌 해산으로 소속 의원 70% 가까이가 ‘무(無)파벌’이 된 상태에서 4월 보선에서 승리할 시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패배할 경우 반(反)기시다 움직임이 거세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