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침체가 지속되고 있지만 개인들의 카드 사용액은 오히려 증가추세다. 지난해 개인 카드 승인액은 통계 작성 후 처음으로 900조원을 돌파했다. 승인건수와 금액 모두 증가한 가운데서도 평균 승인액이 줄어든 것을 미뤄보면 고가의 사치품보다는 필수재인 생필품 소비가 늘어난 때문으로 풀이된다. 카드 사용액은 늘었지만 그만큼 카드 결제금액을 감당하지 못해 결제를 미루는 리볼빙 서비스 이용액도 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카드 사용 증가가 소비 심리 회복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체 카드 승인금액과 승인건수는 각각 300조 2000억 원, 70억 5000만 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6.2% 및 6.7% 증가했다. 개인카드 승인액과 승인건수는 246조 7000억 원, 66억 5000만 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8%, 7.0% 늘었고 법인카드 승인액 및 승인 건수는 53조 6000억 원, 4억 건으로 같은 기간 8.2%, 1.9% 증가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4분기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면서 소비심리가 양호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온라인 거래액의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카드 승인 실적이 늘었다"며 "해외여행 정상화 및 관광 활성화 추세로 여행 관련 업종 수요 증가 흐름이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체 카드 승인금액 및 승인건수는 1162조 2000억 원, 276억 7000만 건으로 전년보다 각각 7.7%, 5.9% 증가했다. 특히 개인카드 승인금액은 954조 8000억 원을 기록해 처음 900조원을 돌파했다.
카드 승인금액과 승인 건수 모두 증가했지만 금액에 비해 승인 건수가 더 늘면서 1건당 평균 승인금액은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전체 카드 평균 승인금액은 4만 1998원으로 전년(4만 2729원)보다 1.7% 줄었다. 개인카드 평균 승인금액도 3만 6600원으로 전년(3만 7077원)보다 1.3% 감소했고 법인 카드도 건당 13만 1516원이 승인돼 전년(13만 3804원)보다 1.7% 줄었다. 물가가 오름세를 보였음에도 건당 평균 승인금액이 줄어든 것은 값비싼 물품보다는 생필품 등 필수재화에 카드 소비가 늘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온라인 쇼핑 수요가 증가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카드승인액 증가가 가장 두드러진 업종은 운수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 등 운수업은 지난해 18조 8000억 원이 승인돼 전년(13조 3300억 원)보다 41%나 증가했다. 이외에 여행업 등이 포함된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업의 승인실적 증가율이 31.8%로 뒤를 이었으며 교육서비스업(13.1%), 숙박 및 음식점업(10%), 협회 및 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업(9.8%),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9.6%), 도매 및 소매업(7.0%) 순이었다. 증가폭이 컸던 업종들은 대부분 여행·관광산업과 관련이 있는 업종이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대부분 업종이 전년동기 대비 증가세가 관측됐다"며 "해외여행 증가 등으로 운수업실적이 늘었으며 여행 관련 업종 매출로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업의 승인 실적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카드 사용액은 늘었지만 결제 금액을 감당하지 못해 결제를 미루는 ‘리볼빙 서비스’도 함께 늘어났다는 점은 카드 사용액 증가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부분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9개 신용카드사(롯데·비씨·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의 결제성 리볼빙 잔액은 7조 5505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739억원 가량 줄긴 했지만 지난해 1월(7조 3666억 원)과 비교하면 2000억 원 가까이 증가했다. 작년 12월은 기업들의 연말 성과급 지급 기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