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었던 압도적인 수준의 증강현실(AR) 경험은 물론 시선과 손짓을 추적하는 사용자경험(UX)은 마치 기기가 머리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에서 2일(현지 시간) 출시한 애플 가상현실(VR) 기기 ‘비전프로’를 체험해 본 느낌은 ‘유려한 사용감’ 자체였다. 다만 기존 VR 헤드셋과 차별화되는 특징적인 콘텐츠는 찾아볼 수 없어 애플의 생태계 조성이 늦어지는 점은 아쉬웠다.
비전프로의 디스플레이는 마치 안경을 쓴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외부 환경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12개 카메라와 두 개의 4K 4000PPI(인치당픽셀) 초고해상도 패널로 눈으로 직접 보는 듯한 ‘현실’을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영상 감상 등 엔터테인먼트 체험도 인상적이다. 해상도가 낮은 타 VR 기기는 가상 화면을 확대할 때 화질 저하를 피할 수 없지만 비전프로는 어떠한 크기로 영상을 키워도 전혀 무리가 없다. 마치 8K 100인치 TV를 눈 앞에 세워두거나 초대형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까지 일으켰다. 기기 자체적으로 3차원(3D) 화면을 촬영·재생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3D 영상 콘텐츠를 쉽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감상할 수도 있게 되는 셈이다.
사용감만큼은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비전프로는 마우스의 기능을 눈과 손이 대신한다. 본격적인 가동 전 시선과 손짓을 인식시키는 과정부터 이질감이 없다. 눈으로 보는 곳을 정확히 가리키고, 팔의 위치와 관계 없이 손짓을 명확히 파악했다. 비전프로는 VR 헤드셋이 갖춰야 할 모든 사용 경험에서 메타 ‘퀘스트3’ 등 경쟁 제품을 뛰어넘는다.
경험의 질이 개선됐을 뿐 그 틀은 기존 VR 기기와 다를 게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퀘스트3’도 외부와 가상 환경을 함께 보는 ‘공간 컴퓨팅’과 시선·손짓 인식을 지원한다. 비전프로의 현실감·몰입감이 더 뛰어나지만 킬러 콘텐츠는 없었다. 무게감도 상당했다. VR 기기 대중화의 가장 큰 장벽인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콘텐츠 부재’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높은 가격도 대중화에 큰 장애가 될 요소로 지목된다. 원화 기준 퀘스트3는 69만 원이지만 비전프로는 세금 포함 5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같은 콘텐츠를 고해상도로 즐기는 데 400만 원 이상을 선뜻 지불할 소비자가 있을까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