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사태 이후 회사가 ‘공동연차’를 적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회사가 구성원들이 연차를 사용하는 날짜를 지정해 주는 제도다. 주로 ‘징검다리 휴일’이나 명절 전후로 공동연차일이 지정돼 눈치를 보지 않고 연휴를 즐길 수 있다. 반면 개인 연차를 소진해야 하는 탓에 정작 필요할 때는 개인 휴가를 사용할 수 없어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불만이 나온다.
4일 산업계에 따르면 10대 건설회사 가운데 하나인 S사는 지난해 10일이었던 공동연차일을 올해 12일로 늘렸다. ‘전 구성원에게 편의를 도모하고 충분한 재충전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공동연차를 지정한다’는 게 S사가 밝힌 확대 이유다. 저연차 사원의 경우 휴가 사용이 어려운 시기에 다른 구성원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연차를 소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강조했으나, 일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적지 않다. 타 건설회사에 비해 공동연차일이 2배 가량 많은 데다, S사가 발표한 공동연차 관련 가이드라인에 ‘필수불가결한 사유 제외, 공동연차 취소 지양’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입사원의 경우 12일에 달하는 공동연차를 제외하면 개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가는 2~3일에 불과하다.
‘회사가 휴가를 강제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오자 S사는 ‘공동연차 취소 지양’이란 문구를 삭제했다. ‘연차가 부족한 입사 1년 미만 구성원 의견을 수렴해 첫 공동연차 미차감 1일을 2일 미차감으로 변경한다’는 점도 추가 조치했다. ‘직책자와 사전 협의 후 업무 상황·일정에 따라 필요 시 자유롭게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S사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에 오해가 있어 재공지 한 상황”이라며 “팀장 등과 사전 협의만 거치며 자율 취소도 언제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팀장 결재는 휴가자가 다수인 상황에서 개인이 근무를 하는 지를 파악하는 수준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내부 구성원들은 ‘현실을 모르는 결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첫 공동 연차 미차감을 2일’로 변경했지만, 이는 입사일 기준 처음 도래하는 명절·연말 공동연차 때에만 해당된다. 사실상 입사 1년 후부터는 ‘개인 휴가 기근’이라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결재 등 방식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S사의 경우 본인 전결로 연차를 사용한다. 공동연차는 팀장 등 직책자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휴가자가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는 개인이 홀로 근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직책자가 개인의 공동연차 취소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내부 구성원들의 시각이다.
공동연차에 따른 갈등은 구성원 사이 협업이 필요하거나, 사업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제조업 유통업, 광고업 등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명절 전후 등에 눈치 보지 말고 쉬자’는 취지이나, 현실에서는 협의 부족, 휴가 강제 등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유통 대기업 계열사인 I사에 근무하는 20대 직장인 A씨는 “(공동연차 사용은) 팀별 재량이라고 하는데, 팀장이 ‘타팀과의 협업일수가 줄어든다며’ 강제하는 분위기”라며 “팀장의 암묵적 강요에 무기명으로 회사에 의견 표출한 적 있는데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동연차는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사에서 강제로 휴식일을 부여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대가 변한 만큼 제도도 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노사 협의체가 갖춰지지 않은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일부 대기업에서도 근로기준법상 명시된 사측·구성원들 사이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견 차만 커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노사협의체가 있는 S사의 경우도 구성원들과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사측은 “아직 자세하게 확인하지 못했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60조 5항에 따르면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같은 법 제62조에는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제60조에 따른 연차 유급휴가일을 갈음하여 특정한 근로일에 근로자를 휴무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재원 공인노무사는 “연차휴가는 언제든 본인이 원하는 날짜에 지정된 일수 만큼 사용해도 된다”며 “공동연차가 강제된다면 당연히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 휴가 사용권 침해에 해당한다. 근로자가 휴식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강제로 쉬게 했다면 사업자의 귀책사유에 따른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