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사장님, 공장 좀 그만 오세요”…‘안전 양호’ 기업도 중대재해 불안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 후 중소사업장 가보니
사장부터 안전 관리하지만…“심적 부담 커”
‘안전 대진단’은 90점…지게차·그라인더 지적
“이 정도면 안전 일터”…타 사업장 우려 더 커

창흥산업은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 대진단’에서 100점 만점에 90점으로 양호등급을 받았다. 양종곤 기자


“사장님처럼 공장에 매일 오시는 분을 못 들었습니다. 저희가 그만 오시라고 할 정도니까요.”


경기 용인에 있는 선박용 디젤엔진 제조업체 창흥산업의 정태오 대표는 매일 아침 사무실 옆에 있는 공장을 찾는다. 전체 26명 직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안전경영’이 안심되기 때문이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으로 확대된 지 일주일여가 지난 5일에도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공장을 찾았다. 정 대표도 40년 가까이 현장에서 일을 했다. 근로자와 소통이 안전 일터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정 대표는 중대재해 처벌 확대 시행에 대해 “(우리 회사도)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기 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설을 갖추고 정부의 여러 안전 사업을 지원받았다”면서도 “(법 시행 후) 심적으로 부담이 크다, 사고는 교통사고처럼 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창흥산업은 약 3년 전 경기 용인으로 이전한 기업이다. 이 곳은 단지 내 여느 시설 보다 외부는 물론 내부도 청결하게 유지됐다. 특히 매년 약 2000만원을 따로 안전비용으로 편성할 만큼 안전시설과 운영에 공을 들였다. 바닥은 작업공간과 이동공간을 나눈 경계선이 명확했고, 작업공간마다 분리대가 설치됐다. ‘공장 관리의 척도’인 녹슬거나 기름 때가 묻은 장비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철저한 관리는 창흥산업에서 한 번도 산재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배경이다.


창흥산업은 고용부가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에 맞춰 도입한 ‘산업안전 대진단’에서도 100점 만점에 90점으로 ‘양호’ 등급을 받았다. 산업안전 대진단은 중대재해법에서 요구하는 안전경영, 인력 및 예산, 위험성 평가, 근로자 참여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스스로 진단하는 방식이다. 수백페이지로 보이는 위험성평가 자료를 꺼낸 정태진 창흥산업 전무는 “(우리 회사는) 매달 안전교육을 받고 있지만, 우리의 위험성 평가가 잘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며 이날 고용부에 방문형 안전진단을 요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95점 양호·무사고 사업장’도 산재예방 전문가인 근로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의 지적은 피해갈 수 없었다. 이날 공장을 둘러본 감독관은 4~5개 안전 규정 미비 사항을 확인했다. 한 작업장의 그라인더에는 안전 덮개가 없었고, 다른 작업장에서는 방진용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작업을 했다. 완성된 엔진을 옮기기 위해 천장에 설치된 크레인 이동통로 안전난간도 미흡하다고 지적됐다. 특히 지게차 1대에는 키가 꽂혀 있었다. 지게차는 운전 미숙으로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사고가 잦아 키를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지게차는 직원 여러 명이 힘을 합해도 넘어진 상태를 되돌리지 못할 만큼 무겁다.


우려는 창흥산업의 지적 사항은 다른 중소기업에 비해 양호할만큼 미미하다는 점이다. 공장을 둘러본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이 정도 수준이면 정말 안전한 사업장”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업장에서 적발된 사례들을 보면, 임시 사다리를 쓰거나 직원들이 지붕 보수 공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배선 관리를 엉망으로 하거나 전선을 검정테이프로 감고 쓰는 경우도 다반사다. ‘산업안전 대진단’에서 합격점을 맞았더라도 현장에서 안전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새로 중대재해법을 적용받는 사업장은 약 84만곳이다. 현장을 둘러 본 근로감독관은 “산업안전 대진단은 중대재해법 이행을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한 성격이 있다”며 “현장에서 안전체계가 제대로 이행되는지는 별개로 봐야 한다, 사업장은 적극적으로 정부 지원 사업을 활용해 달라”고 말했다.




창흥산업 공장은 작업공간과 이동공간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명확하게 그려졌다. 양종곤 기자

창흥산업 한 직원이 쓰고 있는 그라인더 날 위에 안전을 위한 덮개가 없다. 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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