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들의 주식 보관액이 올 들어 2300억 원 이상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 침체 우려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가나는 중국 주식 보관액 감소분보다 더 큰 수준이다. 유럽 증시가 부진한 흐름을 보이는 데다 기업들의 미래 성장성까지 약화하면서 서학개미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진단이다.
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유로 시장 주식 보관 금액은 지난해 12월 말 4억 5809만 달러(약 6106억 원)에서 이달 2일 2억 8093만 달러(약 3741억 원)로 1억 7716만 달러(약 2359억 원) 줄었다. 한 달 남짓 기간 동안 전체 금액의 38.7%가 빠졌다. 국내 투자자들의 유로 시장 주식 보관액은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제조사인 프랑스의 LVMH, 네덜란드의 반도체 극자외선(EUV) 장비 업체 ASML 등이 각광받으면서 2022년 9714만 달러(약 1293억 원)에서 지난해 4억 5809만 달러로 급증했다가 올 들어 다시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예탁원의 유로 시장 주식 보관액은 벨기에 브뤼셀과 룩셈부르크에 각각 본사를 둔 국제예탁결제기관(ICSD) 유로클리어·클리어스트림 등을 통해 주식을 거래하는 자금을 뜻한다. 유로클리어·클리스트림 등 ICSD를 통하면 이들이 투자 국가에 개설한 계좌로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한국 투자자들의 경우 ICSD를 거친 자금을 대부분 유럽 국가에 투입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의 올해 유럽 주식 감소 규모는 중국 본토 주식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국내 투자자의 중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해 말 10억 2672만 달러(약 1조 3664억 원)에서 2일 8억 6173달러(약 1조 1468억 원)로 유럽보다 1217만 달러 적은 1억 6499만 달러(약 2195억 원)가 감소했다. 전체 투자액 가운데 감소한 액수 비중도 16.1%로 유럽보다 작다. 유럽 주식 보관액 감소 규모는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가 급락한 홍콩 증시의 1억 9455만 달러(약 2590억 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기간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보관액은 지난해 말 37억 3857만 달러(약 4조 9760억 원)에서 39억 9578만 달러(약 5조 3184억 원)로 2억 5721달러(약 3424억 원) 늘었다.
국내 투자자들이 올 들어 유럽 주식을 외면하는 것은 지난해까지 명품주,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등으로 주목받던 현지 증시가 성장 동력 약화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5일까지 독일과 프랑스 증시는 각각 0.91%, 0.62%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1.84%, 8.64%씩 오른 미국 다우존스지수와 일본 닛케이지수에 못 미친다. 영국 증시는 심지어 1.56% 하락했다. 유로존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0%에 그친 데 이어 올해 전망도 좋은 편이 아니다.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 시장도 기술 성장주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