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스미스 부대의 교훈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일 만인 1950년 6월 30일 부산에 도착한 미8군 24사단 21연대 1대대장 찰스 스미스 중령은 사단장인 윌리엄 딘 소장으로부터 최대한 북쪽으로 가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딘 소장은 대전 위로 올라가라는 것 외에 전황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고 “미안하다. 행운을 빈다”고 했다. 병력 540명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 5000명에 맞서 유엔 지상군 가운데 첫 전투를 벌였다. 스미스 부대는 급조한 부대였다. 대부분 병사들은 8주간의 기초 훈련만 받은 10대들이었고 북한군 탱크 30여 대에 맞설 대전차무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결국 6시간 15분간의 교전 끝에 181명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는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스미스 부대의 공헌은 컸다. 미군 참전을 목격한 북한군이 열흘간 전열을 재정비하는 사이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죽미령 전투는 미군사에서 ‘준비 없이 나선 전투’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미국 지도부의 준비 부족과 오판, 3차 세계대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국전쟁 초기 미군이 오산·평택·대전 등에서 패전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스미스 부대는 최근 새뮤얼 퍼파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 지명자 인준 청문회에서도 거론됐다. 공화당의 대니얼 설리번 의원(알래스카)은 이 자리에서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가 쓴 책 ‘이런 전쟁’을 꺼내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도 허약한 지도부 탓에 제3세계의 ‘농민군’을 막지 못했고 수많은 미국 청년들이 사망했다”며 “스미스 부대의 역사를 재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자 페렌바크는 책에서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국민은 정신적으로 항복할 준비를 해야 한다”며 “피비린내 나는 제한적인 지상 작전에 대비하지 않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북한의 잇단 도발 위협에 직면한 한국이 더 새겨들어야 할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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