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직전인 8일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내놓은 사과 가격은 전년 설 직전(2023년 1월 20일)보다 10.0%나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는 동일 기준으로 4%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과일 값이 급격하게 올라 국민 부담이 커진 가운데 반대의 조사 결과가 나온 셈이다.
현장의 체감도는 더하다.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구입하는 설 맞이용 사과는 크고 질이 좋은 제수용이라 대형마트에서 1개당 가격이 1만 원에 육박했지만 aT 조사 대상 사과는 제수용이 아닌 1개당 300~350g짜리 중형 사과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정부의 과일 가격 발표를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조사 대상과 방식이 서로 다르다 보니 정확하게 무엇 때문에 차이가 큰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과·배 등 과일 가격이 물가 상승에 파급력을 크게 미치고 있지만 정부 통계는 기관마다 수치가 달라 엇박자를 내고 있다. 특히 과일 가격은 소비자들의 실제 장바구니 물가와 차이가 커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12일 aT에 따르면 설 연휴 직전 3주(1월 19일~2월 7일) 동안의 사과 평균 가격은 1개당 2646원으로 지난해 설 연휴 직전 3주 평균가 대비 10.7% 올랐다.
반면 통계청은 1월 농축수산물 물가지수가 1년 전과 비교해 7.97% 올랐고 그중 사과는 같은 기간 56.8%나 급등했다고 밝혔다. 조사 기간에 차이가 있지만 사과 값만 놓고 보면 편차가 너무 벌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같은 사과라도 어떤 사과를 조사하는지, 정부·유통업체별 할인을 얼마나 반영했는지 등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통계청에서는 ‘○○만 개 한정 50% 할인’ 등 특정 조건이 달린 할인을 반영하지 못한다.
문제는 물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과일 값 통계가 제각각으로 나오면서 혼란만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에서 과실(과일) 기여도는 0.4%포인트로 집계됐다. 기여도는 특정 품목이 물가 상승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수치로 1월 전체 물가 상승률 2.8% 중 7분의 1을 사과·배·귤 등 과일이 끌어올렸다는 의미다. 과일 품목의 기여도가 이렇게 높게 유지되는 것은 2011년 1월 이후 13년 만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앞으로 물가 오름세가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일을 포함해 물가통계 전반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식료품 물가는 1년 전보다 6.0% 상승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폭(2.8%)의 두 배를 웃돈다. 국제유가만 해도 지난해 12월 배럴당 77.3달러까지 떨어진 두바이유 가격이 최근 친이란 무장 세력의 요르단 미군 기지 공격을 포함한 중동 지역의 불안이 커지면서 81달러 안팎까지 반등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부는 숫자가 높지 않게 나오면 안도를 하겠지만 소비자들은 실제 체감과의 괴리 때문에 통계에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통계청·aT 모두 산출 공식이나 품목을 자세히 공개하고 실제 체감 물가와 근접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검토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