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e메일로 아시아태평양계미국인사서협회(APALA)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들떴었는데 같은 날 밤 콜더컷위원회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콜더컷아너상’ 수상을 축하해주셨어요. 상상도 못한 일이다 보니 너무 영광스럽고 한편으로는 놀라 대답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더 트루스 어바웃 드래건스(The Truth about Dragons)’로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콜더컷아너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차호윤(미국명 해나 차) 작가는 수상 소식을 들었던 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린이 그림 작가로서 콜더컷상은 ‘밤하늘의 별’과 같은 상이었다”며 “별을 올려보는 마음으로 과거 수상작을 보며 영감과 힘을 얻었고 언젠가는 나도 그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소망하며 작업했던 나날이 이렇게 빨리 보상받게 돼 무척 영광스럽다”고 덧붙였다. 콜더컷상은 미국 어린이도서관협회(ALSC)가 주관하는 86년 역사의 그림책 상으로 전년도 출판된 가장 뛰어난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주는 상이다. APALA 문학상은 APALA가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기 위해 수여한다.
‘용의 진실’ 정도로 번역되는 수상작은 중국계 미국인 줄리 렁이 스토리를 쓰고 차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동양계 미국인으로 이중국적을 가진 아이가 잠자리에서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는 동양과 서양 문화권에서 각기 살아온 두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서로 다른 모습의 동서양 숲을 모험하며 다른 모습이지만 각기 매혹적인 동양의 푸른 용과 서양의 붉은 용을 만난다.
미국에서 24년, 한국에서 5년을 살며 두 문화를 오갔던 차 작가는 주인공 아이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여 여느 때보다 즐겁게 작업했다고 했다. 작가는 “통상 미국 출판사는 글 작가와 그림 작가 각자가 가진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고자 서로의 교류를 권장하지 않지만 나는 에이전트의 소개로 작가를 만나 동화를 쓴 계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며 “중국인과 백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이를 위해 썼다는 동화에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미국과 한국 두 문화를 오가며 자랐던 내 모습도 겹쳐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두 문화의 차이를 시각은 물론 질감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며 “서양의 붉은 용과 서양 숲을 그릴 때는 수채화 붓과 펜촉을 활용해 유럽 그림책의 화풍을 녹아내려 했고 동양의 푸른 용은 민화 붓으로 그려 우리 민화와 동양화의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2019년 미국에서 출판된 ‘산 사이의 소인이(Tiny Feet Between the Mountains)’로 데뷔한 작가는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미 작업을 끝낸 책들도 차례로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3월 독자를 만나는 ‘바다로 빠지기 직전의 집(The House Before Falling into the Sea)’은 6·25전쟁과 피란의 역사를 어린이의 시선에서 그리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계 미국인인 왕안숙 작가가 글을 쓰고 차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차 작가는 “왕 작가의 어머니가 전쟁 당시 피란민이 쏟아졌던 부산에 살면서 조부모와 함께 갈 곳 없던 피란민들을 집에 들여 도왔는데, 그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라며 “세계가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비슷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먼 한국의 경험이지만 세계 아이들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첫 책에서 그림은 물론 글도 썼던 차 작가는 올해부터 글과 그림을 병행하는 것을 목표한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첫 책을 출간한 후 부족함을 많이 느껴 한동안은 글을 공부하며 그림 작업에만 충실한 날들을 보냈다”며 “시와 같은 짧은 글과 아름다운 그림이 동행하는 어린이 그림책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저도 어릴 때는 책을 끼고 살았는데, 글로 묘사되는 물건의 촉감을 상상하고 삽화가가 그림 사이에 숨겨둔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 무척 즐거웠어요. 특히 그림은 ‘그림 한 장이 천 마디의 가치가 있다’는 속담처럼 내가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를 얼마든지 겹겹이 담아낼 수 있는 멋진 소통의 도구죠. 일본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나 ‘무민의 어머니’ 토베 얀손처럼 따뜻하고 힘이 되는 이야기를 계속 그려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