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올리는 日, '인구 감소' 한계 뚫고 디플레이션 벗어나나

물가 상승률 웃도는 임금 인상룰 요구
스즈키, 올 인상 요구액 전년보다 72%↑
"디플레이션 탈피해 일본 경제 선순환"
정부·중앙은행, 물가·실질임금 상승 주목
‘인구 감소하면 디플레이션’ 공식과 달리
숙박업선 물가 오르고 임금도 동반 상승

이달 들어 일본의 ‘춘투(매년 봄에 열리는 노동계의 단체 임금 교섭)’가 본격화하면서 30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을 벗어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연간 물가 상승률이 2년 연속 일본은행의 물가 목표인 2%를 웃돌고 있는 데다 올해는 실질임금도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12일 니혼게이자이·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스즈키 노동조합은 11일 기본급 상승(베이스업)에 상당하는 임금 개선분과 정기 승급에 해당하는 임금제도 유지분을 합한 총액으로 월 2만 1000엔(약 18만 7513원)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역대 최고액으로 지난해 요구 금액(1만 2200엔)보다 72% 오른 것이다. 일시금도 지난해보다 0.4개월분 많은 6.2개월분을 요구하기로 했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물가 상승과 1인당 영업이익을 고려했다”면서 “임금 인상으로 경제의 선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스즈키의 지난 1년간 영업이익은 4300억 엔(약 3조 8396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대기업에서도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임금 인상안이 제시되고 있다. 9일 야마하 노조는 1만 1000엔의 기본급 상승분을 포함해 1만 7400엔의 실질임금 개선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야마하 직원들의 임금 인상률은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5% 이상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가와사키중공업 노조도 월 1만 8000엔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임금 인상률 5.33%를 제시했다. 노조 관계자는 “우리 노사의 책무는 디플레이션 마인드에서 탈피해 일본 경제를 선순환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미쓰비시중공업과 IHI 노조 역시 월 1만 8000엔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도쿄디즈니리조트를 운영하는 오리엔탈랜드 또한 지난해 임금을 7% 인상한 데 이어 올 4월에도 임금을 6% 올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처럼 일본에서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는 배경에는 지난해 실질임금이 33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대기업들이 임금을 큰 폭으로 인상했지만 41년 만에 최대로 치솟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다 대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나서도 중소기업들은 인상 여력이 크게 떨어진다 .


일본 후생노동성이 최근 내놓은 ‘2023년 근로 통계 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업체의 노동자 1인당 월평균 명목임금은 전년보다 1.2% 오른 32만 9859엔(약 295만 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로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실질임금은 2.5% 하락했다.


정부와 일본은행은 일본 경제가 30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임금과 물가의 동반 상승이라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임금과 물가가 함께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야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중앙은행도 초저금리를 유지해온 ‘아베노믹스’에서 탈피해 금리 인상을 하는 쪽으로 정책 전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와 임금의 동반 상승 조짐은 숙박업에서 가장 뚜렷하게 감지된다. 닛케이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전체 숙박료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0.6%만 올랐는데 지난해 11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62.9%나 상승했다. 닛케이는 “인구가 줄면 물건·서비스 수요가 떨어지며 디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한다는 통설이 있는데 숙박 등 서비스업에서는 노동 인력이 부족해 임금을 올리고 서비스 가격을 인상하는 정반대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경제산업성이 ‘소비하는 고령자가 늘면 수요 초과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론(찰스 굿하트)을 언급하며 인구 감소하에서도 경제성장이나 임금 인상을 수반하는 인플레이션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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