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의 전기를 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비가역적 전기 천공법(IRE)’으로 간암 환자를 치료한 국내 첫 사례가 나왔다.
12일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김도영 소화기내과 교수와 김만득 영상의학과 교수팀은 간암 2기로 진단된 환자 A(76)씨에게 국내 최초로 IRE을 이용한 시술을 진행했다. IRE는 암 주변 피부에 2mm 정도의 틈을 만들어 침을 꽂은 후 고압 전기를 쏴 암세포를 사멸하는 치료법이다. 가정용 콘센트 전압인 220V보다 10배 이상인 최대 3000V의 전기를 사용한다. 암이 발생한 부위에 고강도의 전기를 쏘면 세포막에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크기의 구멍이 여러 개 생긴다. 이 구멍으로 인해 암세포 안팎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죽게 되는 원리다.
치료 후에는 암세포가 사멸할 뿐 아니라 체내 면역세포 활동도 촉진된다. IRE는 미국에서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 효과가 적은 환자 대상으로 개발돼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세브란스병원이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 임상 연구를 위해 2016년 처음 도입한 이래 췌장암 환자 40여 명이 수술대에 올랐다.
췌장암, 전립선암 등의 치료에 사용되던 IRE를 국내에서 간암 환자에게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병원에 따르면 A씨는 장과 간 사이의 혈관인 간문맥 등 주변 장기와 간암 조직이 닿아 있었다. 김 교수팀은 고주파나 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하는 기존 간암 국소 치료법의 경우 높은 열이 주변 장기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봤다. 그에 비해 IRE는 시술 과정에서 열에너지가 발생하지 않고 암세포만 타격하기 때문에 암 주변 혈관과 조직을 보호하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시술을 무사히 마친 A씨는 퇴원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간암 환자에서 IRE 시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만큼 향후 대상 암종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김도영 교수는 “암 병변이 간문맥과 닿아 있어 열을 이용한 기존 치료법 대신 치료 부위만 타깃할 수 있는 비가역적 전기 천공법을 시행했다”며 “IRE 시술을 받은 환자는 앞으로 외래 진료를 통해 정기적인 추적 관찰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