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 단체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즉각적인 집단행동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고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의료계 집단행동에서 가장 파급력이 큰 전공의들이 당장 집단행동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데 안도하면서도 언제든지 집단 휴직이나 집단 사직 등 총파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전일 9시부터 새벽까지 진행된 온라인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을 제외한 집행부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의결했다. 대전협은 이날 홈페이지에서 이 같은 결과를 알리면서도 향후 집단행동 계획에 대해서는 명확히 공개하지 않았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전공의들이 우선 ‘신중 모드’를 취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박 회장이 개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모든 대응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여러 차례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대위 체제 전환 외에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발 빠르게 초동 조치를 취하며 ‘강경 대응’ 기조를 밝힌 것을 전공의들이 신중 모드에 돌입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6일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직후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면서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할 경우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대한의사협회(의협)에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튿날에는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퇴사하는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해 각 수련병원에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도 내렸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던 2020년 8월 당시와 현재 의료계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다른 점도 전공의들이 즉각적인 집단행동에 나서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 원년으로 미증유 전염병에 대한 공포감이 상당했던 시기다. 현재와 비교해 일 평균 코로나 확진자 숫자는 많지 않지만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를 시행하고 가용 병상도 넉넉하지 않았던 때다. 이에 따라 일선 응급의료 현장을 지켜야 할 전공의의 80%가 파업에 나서면서 의료 현장은 아비규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자리 잡은 현재와는 의료 환경이 크게 다르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행동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닌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롭게 집행부로 들어설 비대위가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릴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들이 수련 계약을 맺는 시점이 통상 3월인 만큼 수련 기간 종료 후 병원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투쟁에 나설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전공의의 집단행동을 원천 차단한 만큼 투쟁 수위를 낮춰 합법적인 형태로 반발 의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관측이다. 15일 예정된 대한의사협회의 전국 궐기대회와 17일로 예정된 전국 의사대표자회의 등도 언제든 전공의들과 연대해 집단행동의 불씨를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의료 현장에서 전공의들이 가진 파급력을 잘 알고 있는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을 강조하면서도 연일 전공의들을 달래기 위한 설득 작업에 나서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의료 개혁과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브리핑 이후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 표명이 없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계속 주시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환자 곁을 지키는 결단을 내려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4월 전 (의대 증원분의) 학교별 배정을 확정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협의해 관련 절차를 신속히 이행하겠다”며 “3월이 될 수도 있고 2월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