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바이러스만 한 크기의 나노(초소형)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특정한 유전자를 감지해 스스로 엔진을 켜고 끌 수 있는 기능을 갖춰 향후 유전자 조절을 통한 질병 치료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천진우 나노의학연구단장 연구팀이 유전자 신호를 감지해 스스로 클러치를 작동하는 생체 나노로봇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연구 성과는 이달 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게재됐다.
나노로봇은 바이러스와 비슷한 200㎚(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를 가졌다. 가장 작은 세포인 적혈구의 50분의 1 크기다. 작은 본체 안에 로봇을 작동시키는 엔진과 프로펠러 같은 로터(회전체), 이를 켜고 끄는 장치인 클러치까지 고루 갖췄다. 클러치는 특정한 유전자 신호에만 반응해 필요할 경우 ‘피코뉴턴(pN)’ 단위의 미미한 힘을 로터에 전달해 엔진이 작동하도록 한다. 정상적인 유전자는 건드리지 않고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아 선택적으로 활성화하거나 억제시키는 식으로 질병 치료에 응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나노로봇이 개발됐지만 클러치 기능을 구현하지는 못했다. 연구팀은 유전물질인 DNA 가닥으로 클러치를 만들었다. DNA는 엔진과 연결된 한 가닥, 로터와 연결된 다른 한 가닥 등 두 가닥으로 이뤄진다. 두 가닥은 특정한 유전자 신호에만 화학적으로 반응해 결합한다. 이를 통해 엔진과 로터가 결합되고, 로터의 회전이 엔진으로 전달돼 나노로봇이 작동한다. DNA 가닥을 이루는 20개의 염기 서열 조합을 코딩하듯 바꿈으로써 클러치가 어떤 유전자 신호에 반응할지를 조절할 수 있다.
연구팀은 만들 수 있는 염기서열 조합이 1조 가지에 달하며 인체 바깥에서 자력(자석의 힘)을 이용해 무선으로 나노로봇을 제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페어 피셔 막스플랑크의학연구소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나노로봇”이라고 평가했다고 IBS는 전했다. 천 단장은 “정보의 프로그램화가 가능한 클러치가 구현됐다는 것은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로봇이 스스로 주변을 감지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머지않아 진단이나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자율주행 나노로봇이 개발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