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 개화로 반도체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사들이 조만간 치열한 가격 경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세계적인 D램 회사들이 HBM 설비를 적극적으로 증축하고 있어 수년 내 생산량이 대폭 확대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공정 성숙도 역시 빠르게 올라가면서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시장 조사업체 욜 그룹은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주최로 열린 'ISS 2024' 행사에서 세계 HBM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망치를 보면 세계 HBM 시장 출하량은 지난해 4엑사비트(Eb)였고 올해 7Eb, 2028년이면 28Eb까지 올라간다. 욜 측은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연간 45%씩 성장한다고 내다봤다. 매출 규모 역시 큰 폭의 증가가 예상된다. 올해 90억 달러(약 12조 원)로 예상되는 세계 HBM 매출은 2028년이면 240억 달러(약 32조원) 수준으로 거의 3배 가까이 뛸 전망이다.
HBM 출하량은 전체 D램 출하량에서 2%에 그친다. 2028년에도 5.3% 비율로 관측된다. 하지만 HBM은 가격 프리미엄이 큰 제품이다. 지난해 세계 D램 시장 전체 매출이 500억 달러 정도였는데, HBM 매출은 전체의 10% 이상을 웃돌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HBM은 고성능 D램을 여러 층 쌓아 1000개 이상의 정보 이동 통로를 만든 반도체다. 이 칩은 그래픽처리장치(GPU), 뉴럴프로세싱유닛(NPU) 등 AI 연산 장치 바로 옆에 장착돼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를 훨씬 신속하게 보조한다. 최근 챗GPT 등 생성형 AI가 발전하면서 세계 곳곳의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구매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HBM 제조사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칩 출하량에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공정 난도 때문이다. 얇은 두께로 여러 층을 쌓는 기술 뿐 아니라 1000개 이상의 미세 구멍(TSV)를 뚫는 기술 등 구현이 어려운 다양한 기술을 혼합해야 하기 때문에 비싼 값이 매겨진다.
욜 그룹은 지금 형성된 HBM 가격 프리미엄이 조만간 크게 낮아진다고 내다봤다. 욜 그룹은 "HBM 가격은 DDR4 D램에 비해 가격이 500% 이상 높고 범용 D램에 비해서는 6배나 높은 가격대"라면서도 "2028년이면 HBM이 주류 D램보다 3배 정도 높은 가격대로 내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제시한 HBM의 용량 당 가격 전망을 보면 지난해에는 Gb당 1.43달러였던 반면 2028년이 되면 0.86달러로 뚝 떨어진다.
욜 그룹은 HBM의 Gb당 가격이 내려가는 주요 원인으로 시장 경쟁을 꼽았다. 현재 HBM 생산 주도권은 관련 시장 1위 SK하이닉스와 이들을 바짝 뒤쫓는 삼성전자가 쥐고 있지만 최근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5세대 HBM(HBM3E) 시장 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생산 능력을 기존보다 2배 이상 올리기로 하면서 공급량 확대를 예고했다. 더구나 HBM 양산 기술도 더 성숙해지면서 가격 출혈 경쟁, 이른바 HBM '치킨 게임'이 대두할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BM은 첨단 D램 공정의 집합체라는 마케팅 포인트로서는 상당히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전체 D램 매출 구조를 뒤집을 만한 품목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공정이 무르익으면 가격대가 낮아지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