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레미병원 요양 중 빈센트 반 고흐는 유독 사이프러스 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많이 그렸다. 모두 남프랑스의 풍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지만 고흐에게는 단순한 모티브 이상의 의미였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가 기도였다면 올리브 나무는 이 세상에서의 길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음미였달까. 1889년 6월에서 11월까지 그는 집중해서 여러 점의 올리브 나무 그림을 완성했다.
그것들 가운데 한 점이 미국 미니애폴리스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노란 하늘과 태양 아래의 올리브 나무들’이라는 제목이 달린 것으로 집중해서 올리브 나무를 그리던 1889년 11월에 그려진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워런 키스 라이트는 오로지 그 그림을 보기 위해 15년 동안 적어도 열다섯 번 이상 미니애폴리스미술관을 찾았다. 워런 자신도 자신의 마음이 왜 그토록 그 그림 앞에서 흔들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언젠가는 그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고흐가 인생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을 떠올렸거나 앞으로는 그 그림을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그 수수께끼의 의미에 다가서는 것이 워런에게 허락됐다. 하나의 그림에 등장하는 두 개의 시간, 그것이 핵심이다. 이글거리는 늦은 오후의 태양은 서쪽 산 위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올리브 나무들로 ‘실제로’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드는 빛은 그 빛이 아니다. 그 빛은 왼쪽 상단, 그러니까 남서쪽에서 비추는 빛이다. 그 빛의 광원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보고 있는 태양은 이미 지나가버린 현재를 비출 뿐이다. 엇갈린 시간, 그때 인생의 눈물 나는 실체가 드러난다. 얼마나 많이 우리는 과거 속에서 머무는가. 미술관의 도록에는 고흐의 실수일 뿐이라고 적혀 있다. 과연 고흐의 실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