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일자리 도시, 잠자리 도시

‘스마트시티’ 평가, 베이징이 서울 추월
취리히 등 신기술 실증…양질고용 창출
한국에선 플랫폼 도시 건설 비전 없어
ICT 등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만들어야

세계에서 가장 앞선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갖춘 도시는 어디일까. 우리 국민이라면 으레 “서울”이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아쉽지만 해외 기관들의 시각은 다르다. 전 세계 100여 개 주요 도시별 ICT 및 친환경 경쟁력 등을 평가하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스마트시티인덱스’에 따르면 서울은 지난해 16위를 기록했다. 2019년 23위였던 것에 비하면 일곱 계단 오르는 성과를 냈지만 선두권으로 가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같은 기간 베이징은 30위에서 12위로 껑충 뛰어 서울을 추월했다. 동북아시아의 4차 산업혁명 허브 도시 자리를 놓고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부동의 1~2위는 각각 스위스 취리히, 노르웨이 오슬로였으며 영국 런던은 같은 기간 6위에서 3위로 상승했다. 싱가포르도 10위에서 7위로 올라섰다.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13위를 기록했다.


서울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들을 실증할 수 있는 플랫폼 도시로 빠르게 변화 중이라는 것이다. 취리히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취리히공대 등을 중심으로 산·관·학이 어우러져 첨단 정보기술(IT) 생태계가 구축됐다. 오슬로는 일찌감치 자율주행자동차를 대중교통에 도입했고 유럽 최고의 전기차 충전 설비를 갖춰 미래형 자동차의 테스트베드로 발돋움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도시에서 삶과 관련한 모든 측면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스마트네이션 계획을 2014년에 수립해 신기술의 실증 도시를 자처하고 있다. 아부다비는 2006년부터 ‘마스다르시티’ 건설을 추진해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기술 기업 1000개 이상을 유치했다.


이 같은 사례는 도시가 단순한 주거 기능을 넘어 산업·기술을 선도하는 테스트베드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발간한 ‘미래의 스마트시티에 대한 디지털화 기여도 향상’ 보고서에서 “OECD 회원국의 인구·일자리·국내총생산 중 절반 이상이 도시로 집중될 정도로 한층 도시화된 세상에서 디지털화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은 경제 및 사회 성장과 웰빙에 결정적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도 도시 재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해당 도시가 산업적으로 어떤 신기술의 플랫폼이 될지, 어떤 기업을 유치할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비전 제시가 선행돼야 한다. 아직은 주택 공급 확대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주요 국가들이 혁신 기술을 실증할 플랫폼 시티를 건설할 동안 우리는 잠자는 도시, 베드타운 건설로 치우칠 우려는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022년 주택 보급률은 전국 평균 약 102%다. 서울은 94%이며 경기 99%, 인천도 98%에 달한다.


이제는 도시 개발의 철학·목표·절차·방식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대수술해야 할 때다. 기업들이 신기술을 자유롭게 연구개발하고 실증할 수 있는 ‘플랫폼 시티’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도시 개발 구상 단계부터 어떤 기술을 접목할지가 검토돼야 한다. AI, 드론·로봇, 자율주행, 원격 서비스, 친환경에너지 등의 기술을 구현하려면 건물 내·외부, 도로 등을 어떤 구조로 설계·배치해야 할지, 공역 통제와 도로 교통 체계는 어떻게 개선할지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토기본법·수도권정비법 등 상위 법률에서부터 토지 용도 구분, 지구단위계획 등 하위 행정 체계에 이르기까지 시스템 전체를 개조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규제프리존 적용 확대가 병행된다면 금상첨화다.


혁신적 도시 개발은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도시계획, 건축 토목, 교통·물류 등 전통적인 건설 분야를 넘어 과학기술, 산업 정책, 의료·교육, 행정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밑그림을 그리는 컨트롤타워가 마련돼야 한다. 국토기본법은 총리실 산하에 국토정책위원회를 두도록 했지만 위원 요건에 대해 ‘국토 계획 및 정책에 관하여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만 규정했다.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도시 개발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그래야 ‘잠자리 도시’를 넘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스마트시티’로 나아갈 수 있다.



민병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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