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격분해 멱살잡자 이강인 주먹 날려"…'사분오열' 대표팀 '졸전'은 당연했다

지난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요르단과의 준결승전 당시 손흥민과 이강인 모습.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우리시간으로 7일 오전 열린 요르단과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0대 2로 충격패를 당하며 64년 만의 왕좌 탈환에 실패했다. 해당 경기에서 대표팀은 ‘유효슈팅 제로’의 수모까지 당하며 ‘졸전’을 펼쳤다. 이로 인해 경기 이후 클린스만호를 향한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특히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까지 받은 선수들을 데리고 최악의 경기 내용을 보여준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서는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까지 나서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와중에 영국 대중지 더선이 14일 한국 대표팀 내 심각한 불협화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보도를 했다. 더선 보도와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건은 요르단전 바로 전날인 현지시간 5일 저녁 식사시간에 일어났다.


대표팀에서 경기 전날 저녁은 결전을 앞두고 화합하며 '원팀'임을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 중요한 자리다.



지난 4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설영우, 홍현석, 정우영, 이강인이 훈련장을 뛰며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날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설영우(울산), 정우영(슈투트가르트) 등 대표팀에서 어린 축에 속하는 선수들 몇몇이 저녁 식사를 별도로 일찍 마쳤다. 그러고는 탁구를 치러 갔다.


살짝 늦게 저녁을 먹기 시작한 선수들이 밥을 먹는데 이강인 등이 시끌벅적하게 탁구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제지하려 했지만, 이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격분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다. 이강인은 주먹질로 맞대응했는데 이는 손흥민이 피했다. 다른 선수들이 둘을 떼놓는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되고 말았다.


이후 고참급 선수들은 클린스만 감독을 찾아가 요르단전에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다음 날 경기에서 이강인을 제외하지 않았다.


이강인과 손흥민 등 고참 선수들 사이의 갈등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깊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탁구 사건'이 두 선수의 감정을 폭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손흥민은 "내가 앞으로 대표팀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면서 "감독님께서 저를 더 이상 생각 안 하실 수도 있고 앞으로의 미래는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설영우,(왼쪽부터), 김주성, 오현규, 홍현석, 김지수가 론도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대표팀 내 갈등이 이강인과 손흥민 사이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는 점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회 내내 선수들은 나이대 별로 모여 따로 노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는 훈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강인·설영우·정우영·오현규(셀틱)·김지수(브렌트퍼드) 등 어린 선수들, 손흥민·김진수(전북)·김영권(울산)·이재성(마인츠) 등 고참급 선수들, 그리고 황희찬(울버햄프턴)·황인범(즈베즈다)·김민재(뮌헨) 등 1996년생들이 주축이 된 그룹이 각자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았다.


조별리그 1차전을 대비한 훈련 때부터 마지막 요르단전 훈련 때까지, 각 그룹의 면면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나이로만 분열된 게 아니다. 해외파, 국내파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토너먼트 경기를 앞둔 훈련에서 한 해외파 공격수가 자신에게 강하게 몸싸움을 걸어오는 국내파 수비수에게 불만을 품고 공을 강하게 차며 화풀이하는 장면이 취재진에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중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원정 경기를 마친 뒤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유럽파 선수들이 한국에 일찍 돌아가기 위해 사비로 전세기를 임대해 귀국했던 일도 대표팀 내 갈등의 원인 중 하나였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마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인터뷰를 하던 중 웃고있다. 연합뉴스

이렇듯 대표팀 내 갈등이 증폭되고 있었지만 이를 바로잡아야 할 역할을 맡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재기돼 온 ‘전술 부재’ 뿐 아니라 선수단 장악에도 완벽한 ‘낙제점’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기대에 못 미친 성적과 선수단 내 불화까지 여론이 최악에 이른 상황에서 축구협회는 클린스만호의 카타르 아시안컵 성과를 평가하는 전력강화위원회를 15일 연다.


정몽규 회장 등 축구협회 집행부는 전력강화위원회의 평가를 참고해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만약 새 감독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대표팀은 선수들 간 갈등의 불씨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로 3월 A매치 기간(18∼26일)을 맞이한다.


대표팀은 3월에 태국을 상대로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3, 4차전을 소화한다. 동남아 맹주 태국은 2차 예선 상대 팀 중 가장 껄끄러운 팀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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