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ST) 관련법 통과가 늦어져 사업 일정이 모두 늦춰지고 있습니다”
토큰증권 사업에 참여 중인 한 블록체인 업체 대표 A씨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같이 밝혔다. 자본시장법,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기대와 달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분산원장의 정의,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은 토큰증권 시장을 열기 위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는 지난해 7월 해당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금융당국도 연내 법안 처리를 목표로 국회를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법안 통과 이후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토큰증권 시장을 연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법안 통과는 하세월이다. 개정안은 발의 이후 법안 심사를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여러 차례 상정됐지만, 다른 정쟁·민생 현안에 뒷전으로 밀렸다.
도돌이표 같은 국회의 행보에 업계에서 불만도 터져 나온다. 올해 시행될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도 발의 이후 약 1년 반 동안 논의에 진척이 없다가 지난해 5월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2개월 만에 통과됐다. 대중의 주목도에 따라 법안 처리 속도가 천차만별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 때문에 올해도 법안 통과가 힘들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가상자산법 통과가 늦어진 선례가 있는 만큼 당정에 대한 업계의 불신도 커졌다. A 대표는 “올해 중반만 돼도 토큰증권 서비스가 대거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총선 준비로 법안 통과가 전혀 안 되고 1년 더 미뤄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법안 통과가 미뤄지자 금융당국이 한국거래소와 일부 조각투자 기업에 규제 샌드박스를 허용했지만 블록체인 기업에 돌아가는 몫은 없었다. A 대표는 “조각투자 사업자들은 거의 규제 샌드박스를 준비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틀었지만, (블록체인 기술 기업은) 대형 기업에 시스템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만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다고 해도 승인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비용을 투입할 실익도 적다. 블록체인 기업이 토큰증권 시장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결국 제도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업계는 이미 당정의 약속만 믿고 토큰증권 출시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국내 유수 증권사를 필두로 수많은 토큰증권 연합체가 꾸려졌고 블록체인 기업도 동참했다. 증권사들은 올 초 플랫폼 출시를 목표로 두고 있다.
업계는 이미 준비가 됐다. 이젠 당정이 토큰증권 시장의 포문을 열겠다는 약속을 지킬 차례다. 토큰증권이 시장에 가져올 혁신에 대해선 아무도 의심을 품지 않는다. 전통 금융사에는 먹거리 발굴, 블록체인 기업엔 사업 확장의 기회다. 국회는 서둘러 법안을 통과시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업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